'R&D'로 뛰어온 LG, 'M&A' 타고 나는 삼성에 '긴장'
입력 2016.11.18 07:00|수정 2016.11.18 07:00
    9조원 규모 M&A로 본격화하며, 앞서있던 LG '긴장'
    '수주확대'에 얽매인 사업구조·본업 적자 지속으로 한정된 전략
    'R&D' 전략의 지속가능성 묻는 투자자들
    • 삼성이 인수·합병(M&A)을 통한 자동차 전장 사업 진입에 속도를 내면서, 한 발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LG그룹의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LG는 공급이 본격화된 GM 외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순차적으로 이어 나가며 기초 체력을 다져왔다. 매년 4000억원 규모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후발주자’ 삼성의 한 번의 반격에 조연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당장 LG전자의 시가총액 규모를 뛰어넘는 약 9조원을 투입해 글로벌 전장업체 하만(HARMAN)을 인수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고 있다. 결국 경쟁 업체들에 M&A에 대응해 '연구개발(R&D) 투자'로 대응에 나선 LG의 근본 전략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도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LG가 앓아온 고민 해결한 삼성-하만 딜(Deal)...결국 자금력 차이 

      LG그룹은 그간 자동차 전장 사업에 뛰어든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게 가시적 성과를 보인 곳으로 꼽혀왔다. 이미 10년 전부터 R&D 투자에 나서 기술력을 확보했고, LG전자(구동 인버터 및 인포테인먼트)·LG화학(배터리)·LG이노텍(모터)·LG디스플레이(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를 통한 생산망도 구축해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약 9조원 규모 M&A 딜을 성사한 삼성의 발빠른 행보로 LG의 주도권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LG 입장에선 완성차 업체 고객망 확보는 전장사업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 자동차 사업은 신규 부품 업체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고, 기존 글로벌 부품업체와 완성차 업체간 관계가 긴밀해 기술력 외에도 공급망 확보가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이번 M&A를 통해 전장부문 글로벌 메이저 업체 하만이 보유한 완성차 고객망을 확보하게 됐다. 공급망 확보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이게 됐다. 올해 초 밑그림을 그린 BYD 등 선두업체로의 지분투자와 일련의 M&A를 통한 ‘투 트랙’ 전략이 본격화 된 모습이다.

      결국 ‘자금력’의 차이가 점차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인수금융 등 별도 금융기법 없이 보유 현금(인수이전 약 25조원)으로 M&A를 진행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자동차사업(VC)본부가 속한 LG전자의 현재 현금보유(약 3조4000억원)로는 글로벌 업체 인수에 나서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당장 반도체·스마트폰 등 기존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른 삼성전자와 달리, LG전자는 기존 사업도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도 MC사업본부가 1조원 규모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 유지에 사활이 걸린 LG전자 입장에선 당분간 M&A는 꺼내기 어려운 카드가 됐다.

      ◇그간 가격경쟁력 초점 맞춘 LG... 사업 경쟁 직면

      LG전자 입장에선 사업적 측면에서도 험난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간 완성차 업체가 아닌 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특수한 분야로 ‘카 오디오’를 꼽아왔다. IT업체들이 뛰어들기 시작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사업에서 차별화를 보일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다. 하만은 현대·기아 자동차, 아우디, BMW는 물론 롤스로이스, 벤트리 등 초고가 프리미엄 완성차업체까지 다양한 고객망을 확보하고 있다. 하만카돈(Harman Kardon), 뱅앤올룹슨(B&O), 바우어앤윌킨스(B&W), JBL 등 다양한 브랜드를 활용해 프리미엄시장에서 중·저가 시장까지 고객망 다변화를 꾀하기도 쉽다. 단순히 음향 기술을 떠나 자동차에 명령을 내리는 음성 인식·소음 제거 등 부문에서도 하만은 전 세계 선두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LG가 각 부품의 '패키지' 납품을 통한 OEM 전략으로 운신의 폭이 한정된 점과도 대비된다. 기존 자동차 부품업에서 신규 진입자인 LG는 진입 전략으로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췄다. 세계 선두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춘 LG화학의 배터리를 기반으로 LG전자의 11종 전장부품을 함께 공급한 GM ‘볼트’ 계약이 대표적이다.

      수익성에서도 브랜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하만의 연간 매출 및 순이익은 각각 약 70억달러·7억달러 수준으로 전망된다. 이 중 차량용 오디오 사업이 포함된 오디오 사업 매출 비중은 31%에 달한다. 오디오 사업의 영업이익률(12.5%)도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수익 본격화가 시작하지 않은 LG전자 내 VC 사업본부가 적자에 머물고 있는 점과 대비해도 격차는 벌어져있다.

      한 증권사 담당 연구원은 “LG전자의 VC사업본부가 회사 설명대로 매년 30% 이상씩 매출 성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하만처럼 8조원대 매출을 기록하려면 빨라도 2022년이 지나야 한다”라며 “전장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었고, 먼저 시장에 진입한 LG가 우위에 있던 부분도 이 부분이었는데, 삼성이 M&A로 그 격차를 한 번에 좁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속가능성 의문 앞에 선 LG의 'R&D 집중' 전략

      결국 지속적으로 R&D 투자가 집행돼야할 LG 입장에선 당분간 투자비용과 현금흐름의 불일치를 겪게 됐다. 반면 LG는 자동차용 모터·배터리로 경쟁력을 갖춘 영역이 좁아지고 있다. LG전자의 고질적 한계인 높은 원가구조도 발목을 잡고 있다. 부진이 지속된 MC사업본부의 인력을 VC사업본부가 받아주면서, 당장 고정비 부담도 가중되는 모습이다.

      대규모 M&A를 진행하기엔 자금력이 부족하고, 수익성 가시화까지는 여전히 10년여의 시간이 필요한 LG를 지켜보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존 사업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익에 대한 압력이 커진다면, 완성차와의 가격 협상력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LG의 완성차 사업을 지켜보는 업계 관계자들은 GM과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끝내 '트랙 레코드'를 확보하는 방안 외에는 당장 손쓸수 있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GM볼트가 예상 외로 대성공을 보이면 LG가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절실해진 상황”이라며 “다만 현재까지의 상황으로는 ‘자동차 산업은 결국 자본력이 좌우한다’는 결정적인 LG의 한계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