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의견거절'...산업은행ㆍ안진 밀월관계 종식 신호?
입력 2016.11.22 08:05|수정 2016.11.22 08:05
    수주산업 회계처리 문제 vs 무리한 회계감사
    느슨한 주인 '산은'·회계제도 손질 안하는 금융당국
    회계업계의 치열한 생존 경쟁
    •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이 대우건설 분기보고서에 '의견거절'을 제시한 후 회계법인과 산업은행, 대기업들 사이에서 공방전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수주산업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국내 회계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 3분기 개별·연결재무제표에 대해 외부감사인인 안진으로부터 '검토의견 거절'을 받았다. 외부감사인은 감사대상의 분·반기 또는 연말 감사보고서를 검토한 후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중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중 의견거절은 말 그대로 회계법인이 재무제표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줄 수가 없다는 의미다.

      딜로이트안진은 대우건설의 ▲공사수익 ▲미청구공사 ▲확정계약자산과 관련된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이 세 사항을 증빙할 때까지 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과거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경험과 불충분한 자료제출을 고려하더라도 이례적으로 강경한 조치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국내 기업이 회계법인으로부터 연말 결산보고서가 아닌 분·반기보고서에 의견거절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분·반기보고서는 결산보고서보다 준비 기간이 짧아 회계법인이 그로부터 위험을 인식하더라도 경고를 주는 수준에 그친다"라고 언급했다.

      대우건설이 연말까지 제출할 감사보고서가 내년 3월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한다면 회사는 상장폐지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 회계처리 소홀했던 대우건설 vs 딜로이트안진의 무리한 조치

      이 사태를 단순히 '강경한 감사 조치'로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회계법인은 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를 감사할 뿐 회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 또는 산업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의 올 3분기 재무제표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늘었음에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537억원을 나타냈다. 매출채권이 현금화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해외 인프라·플랜트 공사에서 발생한 미청구공사도 여전히 문제였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대형 조선사들의 대규모 적자를 불러온 수주산업의 회계처리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라며 "이는 회계의 영역을 넘어선 산업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감사로 궁지에 몰린 딜로이트안진이 '부실 회계법인'이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강경한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외부감사이었던 딜로이트안진은 대우조선의 올해 수조원대 분식회계 사태에 발목이 잡혀있다. 내부 회계사들의 이탈이 속출하고 있고, 이달에는 대우조선 회계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안진 임원이 구속됐다. 자칫 딜로이트와의 협력관계가 단절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딜로이트안진이 부실 감사의 원흉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강경한 회계감사를 벌였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딜로이트안진과 산업은행이 맺어온 그동안의 관계를 고려하면 양사의 '밀월관계'가 서서히 종식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산업은행은 각종 대규모 거래에서 딜로이트안진을 회계자문사로 중용했고, 안진 역시 금호·현대그룹 등 굵직한 그룹의 실사를 담당하며 산업은행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자칫 딜로이트안진에 '독'이 될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대우조선해양 분기보고서가 외부감사인(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을 받은 점과 비교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산업은행 자회사이자 수주산업에 속한 기업들이다.  분식회계 논란의 중심에는 대우건설이 아닌, 대우조선해양이 서 있었다.

      또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자칫 한계기업인 대우조선해양과 이보다 우량한 건설사인 대우건설이 일반인들로부터 같은 선상에서 비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번 조치가 불러올 예민한 부분을 지적했다.

      ◇ 구경만 한 산업은행과 분식회계 처벌·회계제도 손질 손놓은 금융당국

      이번 사태로 산업은행은 또다시 자회사 관리부실 비판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회계부정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감독 당국은 분식회계를 일으킨 대우조선해양이나 감사를 진행한 딜로이트안진에 대해 아직 별다른 처벌을 내리고 있지 않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딜로이트안진의 강경함이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속히 종결해 회사를 정상화해 달라는 강력한 신호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1980년대부터 유지된 현재의 자율수임제를 지정감사제롤 변경하자는 회계업계의 목소리에도 미온적이었다고 지적받고 있다.  애초부터 지정감사제 하에 대우건설이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회계감사가 이뤄졌다면 현 사태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주장이다.

      현행 자율수임제 하에서는 동일한 회계법인이 3년씩 세 차례에 걸쳐 최대 9년까지 기업 재무제표를 감사할 수 있다. 기업이 감사의 대상이자 고객인 '갑'이 되기 때문에 수수료를 받는 '을'인 회계법인은 감사의 독립성을 지키기가 어렵다.

      회계법인들은 이에 따라 A 회계법인이 3년씩 두 차례의 감사를 진행하면 마지막 3년은 B 회계법인이 의무적으로 지정감사를 하도록 하는 내용 중심의 제도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는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만 지정감사제가 적용된다. 분식회계 등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에 한해 감독당국이 특정 회계법인이 지정감사를 맡도록 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회계법인들의 내년도 일감과 판도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회계법인들은 당장 올 연말에 진행될 내년도 감사업체 선정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이 사태가 어떻게 일단락될 지 지켜봐야 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딜로이트안진이 기업들 사이에선 깐깐한 회계법인으로 인식될 수 있다”라며 "이러한 분위기를 연말에 진행될 고객확보 경쟁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경쟁사들의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