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필요성 커지는 産銀, 다시 '민영화' 카드 부각?
입력 2016.11.22 08:07|수정 2016.11.22 08:07
    비대해진 정책금융에 대우조선 등 관리 실패
    '개편 시기 놓쳤다' 산은 내부에서도 "변화 필요해"
    독일재건은행 사업 구조 참고 가능
    지주로 개편하고 상업은행 분리해 민영화하면 '윈윈'
    •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사태에서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한국산업은행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팎으로 커지고 있다. 산업 흐름의 변화와 정책금융의 과잉 속에서 관리능력의 부재를 보여준 산업은행의 존재 의의를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공존하고 있는 상업은행 기능을 과감히 분리하고, 기능별 지주 체제 개편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며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다시 민영화 필요성도 언급되고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 사태로 홍역을 앓았던 산업은행은 최근 또 다시 1조8000억원의 출자전환을 결정하며 혈세 낭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설상가상 대우건설이 딜로이트안진으로부터 분기보고서 감사 의견 거절을 받으며 추진 중이던 매각도 표류하게 됐다.

      관리 부실과 구조조정 실패가 잇따르며 산업은행은 그 존립 기반까지 의심당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정책 자금을 공급해 산업 발전을 이끄는 첨병 역할에서 부실해진 기업에 밑도 끝도 없이 혈세를 들이붓는 천덕꾸러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금융 개편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1990년대 중후장대 산업을 기반으로 한 정책금융의 시대가 끝났지만, 산업은행의 조직 규모와 공급 자금 규모는 비대해져만 갔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책금융 비중은 7.3%에 달했다. 서구 선진국은 많아도 1%를 넘지 않았다. 이런 자금 중 상당수가 대기업으로 향했다. 2015년말 기준 산업은행의 대기업 대출 비중은 66.8%에 달했다.

      이는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한 산업은행 임원급 인사는 "시대는 4차 산업 혁명을 향해 가는데 산업은행은 이에 맞게 변신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지금 시대에 3000명이 넘는 인원이 정책금융을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정책금융의 실패는 구조조정 부문만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채권단 위주의 구조조정 모델은 시대에 뒤떨어져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매금융 등 정책금융기관과 어울리지 않는 사업 부문도 어색하게 산업은행 내부에 공생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산업은행이 개인용 금융상품인 종합자산관리계좌(ISA) 사업을 추진했다가 철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을 보이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대우조선 사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상황에서 차기 정권이 산업은행을 지금 모습대로 존속시킬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안팎의 목소리 중 최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독일재건은행(KfW)식 체제 개편이다. KfW는 산업은행과 비슷한 정책금융기관으로, 유럽 정책금융기관의 롤모델로 꼽힌다. 지난 정권때 추진된 산업은행 민영화도 KfW와 유럽투자펀드(EIF)를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었다.

      KfW는 금융그룹 형태로, 본사인 KfW와 5개 주요자회사로 구성된다. KfW는 중소기업 지원 및 사회인프라 지원을 담당하고, 각 자회사는 부문별로 민간부문 개발도상국 진출 지원, 동독 통화변환 업무, 신재생에너지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눈에 띄는 부분은 자회사 중 하나인 아이펙스(KfW IPEX Bank)다. 아이펙스는 KfW가 2008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며 상업은행 부문을 분리해 만든 자회사다. 글로벌 프로젝트파이낸싱(PF)및 수출금융 지원이 주요 사업이다. 자산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286억유로(약 35조원)으로 KfW 그룹에서 5% 정도를 차지하지만, 그룹 이익 기여도는 2013~2015년 연평균 33.1%에 달한다.

      산업은행도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 PF 등 자본시장 부문과 소매금융 등 상업은행 부문을 별도 자회사로 분할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이펙스처럼 정부의 명시적 보증 혜택을 주지 않고 자체 신용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게 하면 특혜 논란도 최소화 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이 회사를 기업공개(IPO) 방식으로 민영화할 수도 있다. 산업은행 전체 민영화보다 시장의 반발이 적으며, 자회사 지분매각과 배당을 통해 정책금융 재원을 마련할 기회도 생긴다.

      구조조정 부문도 떼어내 별도 자회사로 가져가며 민간부문에 구조조정 기능을 점차 이양하는 방식도 취할 수 있다. 자회사인 산은캐피탈도 벤처금융 기능을 강화해 활용이 가능하다. KfW 역시 캐피탈 자회사를 통해 벤처투자 일부를 집행하고 있다.

      한 은행지주 관계자는 "산업은행 개편은 전체적으로 정책금융 체제의 큰 그림을 개편하는 작업이 동반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일본은 지난 2008년 9개의 정책금융기관을 '정책금융공고'로 통합하고 산업은행과 비슷한 역할인 정책투자은행(DBJ)도 정책금융 기능을 분리해 완전민영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