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밥캣과 이랜드리테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입력 2017.01.13 07:00|수정 2017.01.17 15:01
    [Invest Column]
    • “한국신용평가는 두산밥캣 IPO 때는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는데, 같은 상황인 이랜드에는 반대되는 평가를 내려 납득을 못하겠다. 두산밥캣과 이랜드리테일 중에 국내 인지도가 더 높은 것은 이랜드리테일 아니겠나”

      한국신용평가가 연말 정기평가에서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자 이랜드 측이 내 놓은 입장이다. 상황을 놓고 보면 일견 이해는 가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공통점은 분명히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2006년에 한국까르푸(1조7000억원)를, 두산인프라코어는 2007년 미국 밥캣(5조7000억원)을 인수했다. 모기업은 막대한 인수대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재무적투자자(FI) 유치에 공을 들였다. 이후 리파이낸싱 부담은 고스란히 전가돼 그룹 전반의 위기를 불러왔고 그 위기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두산과 이랜드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내놓았다. 위기는 쉽게 진화되지 않았고, 결국 두산밥캣과 이랜드리테일 IPO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게 된다.

      두 기업 모두 ‘콧대’가 높다.

      밥캣 IPO 당시 회사의 기업가치를 두고 두산과 시장의 의견 차가 있었다. 두산 입장에선 마지막 카드인만큼 원하는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높은 가격에 상장을 강행한다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참담한 수요예측 결과에 상장을 철회했다. 한 달만에 공모가와 공모규모를 대폭 수정해 다시 상장을 진행했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한풀 꺾였다.

      이랜드리테일 역시 시장과 눈높이가 다른 듯 하다. 국내 유통업계의 부진,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이랜드파크의 임금 미지급 사태로 그룹 이미지도 큰 타격을 받았다. 두산밥캣 사례를 떠올린 주관사가 그룹 측에 시장 상황을 반영한 기업가치를 설득하겠다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상장 기류에 부정적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랜드는 신용평가사의 등급 평가에 대해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몇몇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랜드의 얘기처럼 두산밥캣과 이랜드리테일이 공정한 비교대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대다수 시장참여자들의 목소리다.

      우선 두산밥캣과 이랜드리테일은 같은 ‘급’이 아니다.

      밥캣은 애초부터 북미 1위 소형 건설기계업체다. 두산밥캣의 매출 70%가 북미에서 나오고 있고, 이제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두산밥캣은 미국의 신규주택 착공 건수가 바닥을 치고 증가하기 시작한 2010년 흑자로 돌아선 이후 매년 이익 규모를 키워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에서의 인프라 투자 본격화, 대규모 주택건설 수요가 예상되면서 두산밥캣은 국내 상장사로서는 거의 유일한 미국 인프라 수혜 종목으로 떠올랐다. 두산밥캣이 늘어난 영업현금으로 차입금을 갚으면서 재무여력도 키우고 있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두산밥캣의 자체신용도(재무체력 등급)를 기존 ‘bb-’에서 ‘bb’로 한 단계 상향조정 했다. 이를 기반으로 현금 배당이 이어진다면 현금 유동성 확보가 절신한 모회사 두산인프라코어 입장에선 희소식이다.

      이랜드리테일은 2016년 9월말 기준 26개의 아울렛(뉴코아 18개, 2001 8개)과 27개의 백화점(NC 20개, 동아 7개)을 운영하고 있다. 장기화된 경기침체 등으로 유통업계 전반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랜드리테일의 성장률도 둔화했다. 2015년에는 기존점의 부진, 이랜드월드로의 스파오 브랜드 이관 영향도 겹쳐 역성장했다. 또 임금 체불로 ‘이랜드’ 브랜드 이미지는 추락했다.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기업으로선 치명적이다.

      결국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이다. 패션 사업의 성장률이 꺾이면서 이랜드리테일을 중심으로 유통업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이제 첫 발을 내딛은 수준이다. 국내 유통 대기업들조차 중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중국의 경기 둔화로 과거와 같은 소비 활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부담 요소다.

      두 그룹에 대한 국내 금융시장의 인식도 차이가 극명하다. 두산의 경우 계열사 대부분이 상장사여서 정보 투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시장과의 눈높이 차이는 여전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여러 금융기법 활용만큼이나 시장과 소통이 많은 편이다. 반면 이랜드는 상장사가 전무해 정보 신뢰도 측면에서 크게 떨어진다. 시장에선 “이랜드의 경우 결국 회사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지는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그동안 내 놓았던 재무구조 개선 방안들을 몇 번이나 거둬들이면서 ‘양치기 소년’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랜드의 상황 인식을 요약하자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을 뒤바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정도가 될 듯 싶다.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핵심카드인 이랜드리테일 IPO를 앞두고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이랜드의 고민과 노력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다만 시장의 냉정한 평가에는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밥캣과 비교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해외 시장에서의 존재감과 국내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 참여자들과 투자자들의 수준이 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