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화 대신 외부 공급 채택…LG화학·삼성SDI 거론
"中 대체물량 시급한 국내업체들, 가격 협상력 발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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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Volkswagen)이 대규모 전기차 양산 계획을 발표하면서, LG화학·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배터리 장벽’으로 중국 사업 철수 위기까지 몰렸던 국내 업체 입장에선, 대체 물량을 확보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궁지에 몰린 국내 배터리업체들의 상황 속에서, 완성차 업체를 상대할 '가격 협상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수주 확보를 통한 매출 증대와 별개로, 미래 수익성을 묻는 시각이다.
◆폭스바겐, 전기차 양산 앞둔 부품사 확보…中 타격 국내 업체들 숨통 틔울까?
최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국내 배터리 업체와 가격 및 수주 물량을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 그룹의 배터리 자체 생산도 거론돼왔지만, 외부 공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이 메인 공급업체로 LG화학, 삼성SDI, 중국의 CATL을 검토 중인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차 공급 업체로 역신 등 중국 현지 업체들의 참여가 거론되고 있지만, 기술력 격차로 참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배터리업체 관계자도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상 세부 사항을 공개할 수 없지만 폭스바겐으로의 수주 활동을 하는 건 맞다"고 전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0월 열린 파리 모터쇼를 통해 전기차 양산 목표를 공개했다. 그룹 자체 전기차 플랫폼(MEB)을 통해 2020년까지 100만대를 판매하고, 2025년에는 약 200~300만대까지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2015년 기준 폭스바겐 브랜드 전기차 판매량이 약 10만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전격적인 투자 확대에 나설 것으로 전망돼왔다. 2025년까지 폭스바겐 전체 브랜드 판매량의 25%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한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LG화학과 삼성SDI 모두 폭스바겐으로 현재 샘플(A) 제출 단계에 있고, 입찰(비딩)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국내 업체 중 대규모 투자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세계 선두 수준까지 확보한 LG화학의 참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폭스바겐쪽에서 지난해 4분기 구체적인 가격조건 등을 LG화학에 제시했지만, 판매가격을 지금 대비 절반 수준까지 낮출 것을 요구해 내부 결정이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LG화학에서 원가를 30% 낮추면 대응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고객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확인할 수 없고, 아직 구체적 내부 사항도 결정된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폭스바겐으로의 배터리 공급 물량 및 국내업체들의 수주 비중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가격 기준으로 2020년에서 2029년간 모듈기준 47조원(40billion달러), 팩 기준 약 62조원(53billion달러) 규모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 LG화학이 28개 업체로부터 36조원 수준의 수주를 확보한 점에 비교해도 적지 않은 물량이다.
◆절반 수준 가격 요구해온 폭스바겐…다급한 국내업체들 협상력 '의문'
일각에선 대규모 수주가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의 단가인하 압력이 클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2015년 LG화학의 GM으로의 시장가격 대비 절반 수준의 공급 계약(셀 1 kW당 145달러)이 공개되면서 업계에선 "지나친 저가 수주"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LG화학은 지난해 3분기 컨퍼런스콜을 통해 “고객이 요구하는 가격 수준이 타이트 하지만 점차 (수주)물량이 늘어나면서 가동률이 올라가고, 고정비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라며 “2020년까지 2016년 가격 대비 약 30~40% 절감할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전기차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020년 폭스바겐 요청 가격이 팩 기준 95달러(90유로), 셀 1kW 기준으로는 약 82달러(75유로~78유로)까지 거론되고 있다”라며 “배터리 업체들은 2020년 기준으로 셀 1kw기준 100달러 초반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다고 목표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을 둔 협상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상치 못한 중국의 규제로 신규 공급처 발굴이 급해진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유리한 가격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중단 방침으로 지난해 말 LG화학과 삼성SDI의 중국 공장 가동률이 1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2015년까지 중국 공장 가동률이 85%에 달했던 점(LG화학 기준)을 고려하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대체 매출처 확보가 시급해진 상황이다.
올해안에 전지부문에서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겠다는 LG화학의 계획이 연기될 가능성도 언급된다.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폭스바겐 프로젝트에 대응한 배터리 원가 절감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이 계획 대비 증가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전지 사업 연간 R&D 비용을 전체 매출의 약 12~13% 수준, 특히 자동차 전지 부문에 연간 13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발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성과를 기대했던 중국사업이 차질을 맞은 현 상황에서, 장기적인 배터리 수요처가 등장했다는 건 의미있는 신호”라며 “중국도 올해부터 점차 전기차 보조금을 줄여 2020년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향을 계획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공백 기간동안 낮은 마진에도 중국 공장 물량을 대체할 수 있어 수주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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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1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