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투자자들 "내가 현대차 오너라도 국내엔 투자 안 한다" 한 목소리
입력 2017.01.31 07:00|수정 2017.01.31 07:00
    [취재노트]
    •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미국에 31억달러(약 3조65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시장 신뢰회복과 쇄신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대규모 해외투자만을 늘리겠다는 모습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커지는 국내 정치 리스크, 불안한 시장전망, 노사갈등의 반복 등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정진행 현대차그룹 사장이 밝힌 31억달러의 투자규모는 지난 5년간 미국에 투자한 총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을 크게 웃돈다. 정 사장은 자율주행 및 친환경자동차 R&D 투자확대, 기존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공장신설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현대차가 당장 북미시장 차량공급을 위한 생산시설을 확대할 요인은 없어 보인다. 현대차 앨라베마(Alabama) 공장, 기아차 조지아(Georgia) 공장의 현재 생산능력으로 북미시장 수요에 충분히 대응가능하다. 이 시장의 차량 수요 증가를 예상하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중국,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에 대한 공략이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차의 이번 전략을 두고 시장에선 ▲트럼프發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 ▲국내 시장보다 해외투자를 늘리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차의 국내시장 내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에어백 결함을 포함한 품질논란, 노사갈등 반복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국내 판매량과 직결됐다. 2014년을 기점으로 현대-기아차의 내수점유율은 70% 아래로 떨어졌다. 현대차만 놓고 보면 2016년 국내 시장 점유율이 약 41%로 전년과 비교해 4%p 이상 떨어졌다. 기아차의 지난해 성장률은 1.4%로 둔화했다. 이를 수입차 시장의 확대로만 보긴 어렵다. 지난해 한국GM의 국내판매는 14%, 르노삼성은 39%, 쌍용차는 4%가량 증가했다.

      해외시장 여건도 녹록지 않다. 불확실한 수출경기, 침체된 글로벌 수요로 완성차 업체간 경쟁은 심해지고 있다. 중국시장은 현지업체 성장으로 현대차의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환경 및 안전규제 강화, 친환경자동차 및 자율주행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어 투자부담은 늘고 있다. 신용평가업계는 이같은 대내외 환경이 현대차(AAA), 기아차(AA+)의 중장기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대한 이렇다 할 대규모 투자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내수시장은 중국(21%), 미국(18%)에 이어 16%로 세 번째로 크다. 내수시장은 충성도 높은 고객이 많은 시장이다. 국내시장 평판은 해외시장에서의 인지도 구축에 큰 역할을 한다.

      해외생산의 확대 특히 북미지역 내 생산량 증가는 국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높다. 이는 현대차가 더 이상 국내시장에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단 뜻으로 비춰진다.

      현대차를 바라보는 국내외 투자자들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내가 오너라도 국내엔 투자하지 않겠다"고 반응한다. 대규모 투자발표 이후 현대자 주가가 동요하지 않은 점도 같은 맥락이다. 주가 폭락을 야기한 현대차의 강남구 삼성동 사옥부지 인수발표 때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운신의 폭은 줄어들고 있다. 내수시장의 성장률은 예년 같지 않다. 노사갈등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 생산 기회비용 등을 고려하면 해외시장 진출이 오히려 효율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한 목소리로 현대차가 국내시장에서 '쇄신'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든) 국내에 남아있으려 하겠냐" "국내 시장을 바라보고 투자할만한 요인이 없다"는 의견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