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FI 간 DICC 소송…환경변화 적응 못한 탓
입력 2017.02.16 07:00|수정 2017.02.16 07:00
    두산·FI 간 입장차 여전
    “둘 다 수업료 낸 셈” 평가
    법적 책임, 보다 강조될 것
    • “지분 투자는 손실을 감안하는 것이기에 원금 보장은 어렵다. 우리도 회사가 이렇게 어려워질지 몰랐지만 FI(재무적 투자자)들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두산)

      “그룹 오너가 교체되면서 모든 딜(Deal)을 원점에서 다시 보기 시작했고, DICC 드래그얼롱 무력화도 그 결과다. 신의를 저버린 행위다”(DICC 재무적 투자자)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투자 손실과 관련한 소송 1심에서 법원은 두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프라이빗에쿼티(PE)를 앞세운 FI 측은 항소할 뜻을 내비치고 있어 두산과 FI의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투자은행(IB) 시장에선 이번 소송의 결과도 결과지만, 양 측의 이해득실과 그에 따른 시사점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대와 시장 환경 변화에 발 맞춰 기업과 FI의 거래 관계도 보다 공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산은 소송에선 이겼지만, 여전히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두산 측에서 드래그얼롱(Drag-along; 동반매각청구권)을 무력화했다는 FI의 논리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산 측은 “소송의 핵심은 FI의 투자가 손실이 났는데 원금과 이자를 달라는 것이고 구실은 드래그얼롱 방해”라며 “지분 투자는 손실을 감안하는 것이기에 원금 보장은 어렵고 설사 두산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배임”이라고 설명했다.

      PE들은 두산이 상도덕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항소 가능성을 내비쳤다. PE와 기업이 딜을 할 때는 ‘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통상적으로 드래그얼롱을 행사할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고, 명목상 장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한다. 그렇기에 (DICC 투자 계약 시) 구체적인 조항을 넣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드래그얼롱 옵션 계약을 전제로 펀드에 출자한 FI들은 옵션 실효성의 재점검에 나서는 분위기다.

      소송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면 애초에 두산에 유리한 재판이었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그렇기 때문에 두산이 일을 잘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두산이 자신들의 입장만 관철하려고 했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두산 입장에선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카드였기 때문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깼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다양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서로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맞춰 놨으면 법정소송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번 소송에서 두산과 FI 중 승자는 사실상 없다. 기업과 FI 모두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수업료를 낸 결과라는 것이다.

      두산이 앞으로 금융권에서의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정기평가 결과를 보면 두산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냉정하다. 과거 대비 직간접 자금조달이 수월하지 않고, 두산밥캣 상장으로 더 이상 꺼낼 재무구조 개선 카드도 마땅치 않다. 이번 소송으로 두산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선이 더 냉랭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PE와 두산그룹 간의 관계 악화는 과대 해석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두산그룹에 있어 두산인프라코어와 해외 자회사들의 실적 턴어라운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렇지 못할 경우 두산그룹의 자금조달 창구 문은 더 좁아질 수 있다.

      PE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정’과 ‘의리’, ‘인맥’을 앞세운 국내 PE들의 영업 방식 역시 한계에 직면했다. 재계에 3•4세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전략 유효성은 떨어졌다.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 글로벌 PE들과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점점 더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요구 받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3•4세 대부분이 유학 생활을 경험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익숙해졌고 경영 스타일도 과거 오너들과 달라졌다”며 “딜을 하면서도 관계를 통한 구두 계약 보다 법적 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가를 수 있는 날인 계약을 우선시 한다”고 설명했다.

      PE업계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그동안 PE들이 쉽게 쉽게 일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이제는 과거보다 더 체계적인 산업 및 기업 분석, 더 꼼꼼한 계약 작업이 요구되면서 기업과 PE의 관계도 보다 냉정하게 재설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