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사라진 삼성…신인도 저하 초읽기
입력 2017.03.02 07:00|수정 2017.03.03 09:18
    미전실 해체·사장단 회의 폐지
    "컨트롤타워 대체할 인력도, 조직도, 시스템도 없다"
    각자도생 시작된 계열사들
    그룹 지원 불투명에 신인도 저하 가시화할 듯
    •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사라진다. 그룹의 두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매주 수요일 열리던 계열사 사장단 회의도 폐지된다. 각 계열사들은 대표이사와 이사회를 중심으로 각자도생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으로 이뤄진 삼성그룹의 이 같은 결정에 시장의 우려는 크다.

      삼성의 오너와 미래전략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삼성그룹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요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 경영인이 없다는 지적과 미전실의 역할을 대체할만한 조직과 시스템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삼성(Samsung)'이란 브랜드, 그룹의 지원 가능성이 주요 평가 지표로 작용했던 각 계열사들도 이제는 신인도 하락을 걱정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자본시장이 삼성 계열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정해지고 있다.

      ◇ 사라진 컨트롤타워…대체할 조직과 시스템이 없다

      삼성그룹은 특검 수사 종료 기일인 28일 오후, 미전실 해체와 사장단 회의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한 그룹 쇄신안을 발표했다. 미전실 해체는 지난해 말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청문회 출석 당시 언급한 이후 특검 수사 종료시점에 맞춰 추진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그룹이 미전실 해체 추진을 발표한 이후에도 시장에선 이를 100%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미전실과 같은 또 다른 버전의 '비선(秘線)'조직이 등장할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삼성물산 또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전환, 이를 통한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이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삼성그룹에서 미전실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컸다. 그룹 내에 이를 대체할 만한 인력과 조직 또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발표한 미전실 해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며 "그룹 내 인사정책, M&A, 자금조달 등 굵직한 사안을 처리할 만한 조직이 없기 때문에 기존 미전실의 역할을 대신할 조직이 수면 아래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미 국내 주요 그룹들은 계열사에 힘을 실어주는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측근 인사들을 주요 계열사 임원에 앉히며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각 사업부문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보인 사장단 인사를 통해 나름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췄다는 평가다. 롯데그룹도 삼성의 미전실과 유사한 역할을 했던 기존 정책본부의 역할을 줄여 경영혁신실로 재편했고, 비즈니스유닛(BU) 중심의 조직개편을 추진했다.

      반면 급작스럽게 컨트롤타워의 해체가 진행된 삼성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오너일가의 승계에만 집착했던 나머지 경영능력이 검증된 사장단을 양성할 수 없었고, 책임감 있는 전문경영인을 배출하는 시스템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의 수사가 삼성을 향하면서 그룹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마비됐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던 계열사들 또한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은 물론이고 사업계획을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사실상 오너회사라고 봐도 될 만큼 전문경영인이 목소리를 내기엔 한계가 있던 기업"이라며 "이렇다 할 능력이 검증된 전문경영인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제껏 없었던 (각자도생의)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에 큰 리스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삼성(Samsung) 우산 잃은 계열사들…시장 반응도 차갑다

      "더 이상 삼성 브랜드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그룹의 비주력 계열사들은 당장 신인도 하락을 걱정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삼성이란 브랜드 프리미엄을 더 이상 기대하긴 어려워졌고, 컨트롤타워가 없는 그룹의 향후 자금지원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룹의 지원 가능성이 계열사 신인도 제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삼성 계열사들의 신인도 하락이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경영난을 겪은 삼성중공업은 산업은행에 자구안을 제출하며 1조원대의 증자를 추진했고, 이후 진행한 1조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엔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전기, 삼성SDI, 제일기획,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들이 앞다퉈 증자에 참여했다. 계열사들의 십시일반에 힘입어 삼성중공업은 자금조달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같은 계열지원은 그룹차원의 의사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만큼 앞으로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각 계열사 이사회를 통해 자체적으로 (삼성중공업) 지원여부를 결정했다면 적자인 회사가 어떻게 1조원대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었겠냐"며 "이 같은 계열지원은 그룹차원의 교통정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앞으론 이 같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력 계열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캐시카우(Cash Cow)인 삼성전자를 제외한 비주력 계열사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당장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있는 계열사들과 업황 부진에 시달리며 비주력 사업으로 낙인 찍힌 계열사들의 경우엔 더 그렇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은 올 들어 자본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단 한 건의 회사채 발행 없이 자체자금으로 모든 빚을 갚고 있다. 이는 그룹발 불확실성이 각 계열사의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그 동안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경우 일부 부정적인 재무적인 상황을 그룹지원 가능성 등으로 상쇄하는 효과가 있어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지만 현재로선 이 같은 기대를 하긴 쉽지 않을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 삼성그룹 계열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예전같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