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도시바, 반도체 지분 100% 매각 시사…'일본판' 하이닉스 되나
입력 2017.03.02 07:00|수정 2017.03.03 09:17
    지분 20%→50% 이상→100% 매각…판도 급변
    독과점 문제에 가격 인상까지 인수 부담 증폭…진성매각 의구심
    반도체 사업 수호하려는 정·재계 목소리 커져…정부 주도 구조조정 가능성 거론
    •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매각이 새로운 양상에 접어들고 있다. 지분 일부 매각에서 경영권 매각으로, 이제는 지분 100% 매각까지 거론되고 있다. 경영권 지분 인수전에 참여하려는 SK하이닉스 등 인수 후보들의 완주 가능성은 불투명해지고 있다. 독과점 문제와 더불어 지분 매각가격이 당초 예상보다 2배 이상 늘어나며 인수 부담이 커졌다.

      일각에선 도시바의 진성 매각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을 다른 나라에 넘겨줄 수 없다는 정·재계의 목소리를 도시바가 회생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채권단 관리와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은 28일 도시바가 반도체 자회사의 경영권 지분 매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분 100% 매각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영권 지분 매각이 흥행을 보이자 전체 지분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에 프리미엄을 요구해 매각 금액을 최대한 끌어 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분 전체 매각에 나설 경우 20~30%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매각금액은 2조5000억엔, 우리 돈 약 25조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도시바는 미국 원자력발전사업에서 약 7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떠안으면서, 오는 3월까지 채무를 해소하지 못하면 자본잠식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지난 24일 이사회를 통해 오는 4월1일 반도체사업을 ‘도시바메모리’로 분사해 경영권 지분(50%) 이상 매각에 나서기로 밝힌 바 있다. 지난 14일엔 일본 은행권 등 채권단이 반도체 자회사의 외부 매각을 통한 자구안 마련을 요구해오자 쓰나카와 도시바 사장이 직접 “(전체 매각도) 가능성은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도시바는 오는 5월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연내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다.

      도시바가 연내 매각작업 완료를 발표한 만큼 빠듯한 일정이 예상되면서 인수 후보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전체 종업원의 고용 유지 및 기존 설비 유지 부담도 만만치 않다. 도시바는 '2D낸드' 분야에서 세계 선두 수준 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2D낸드는 3D낸드로 대체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도시바가 지분 100% 매각 '카드'를 꺼내면서 인수 의사를 밝힌 후보자들의 완주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SK하이닉스 외 주요 후보로 거론된 미국 마이크론·웨스턴디지털 등 주요 후보들이 각 국의 독과점 이슈로 참여가 제한되게 된다. 약 26조원에 달하는 매각금액 부담으로 인수 후보도 한정될 전망이다. 당장 SK하이닉스는 물론, 유력 후보로 부상한 대만 반도체 설계회사 TSMC의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크게 초과하는 금액이다.

      일각에선 도시바의 진성 매각 의지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도시바는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력과 생산능력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경영난에서 벗어날 경우 급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초에 도시바가 주력 사업인 반도체를 접는다기 보다는 인수 부담을 키워 후보군을 줄이고 국가 전략 사업으로써의 중요성을 어필해 시간을 벌기 위함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온다.

      일본 정부의 정치적 차원의 결단은 큰 변수다. 앞서 샤프를 대만 폭스콘에 매각한 이후 일본 내에서 자국 핵심기술 보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자금 동원이 가능한 중국 업체로의 매각은 일본 정부 차원 반대가 크다.

      일본 정부도 이에 발을 맞추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도시바의) 플래시 메모리와 원자력 폐기물 대책 사업은 일본의 성장전략에도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의 대응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외부 매각 대신 일본 내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구조조정을 선택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5년 중국 반도체 회사 칭화유니가 미국 마이크론 인수 막바지까지 도달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듯이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반도체 산업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지난 엘피다 반도체 인수전에 참여한 사례처럼, 도시바의 공장 및 설비 실사를 통해 정보만 획득하는 것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매각 범위 및 일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