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삼성전자 출신 사장?'...자괴감 커지는 SDI
입력 2017.03.07 07:00|수정 2017.03.08 10:16
    "'삼성전자·반도체' 출신 임원의 영전" 어김없이 드러난 삼성SDI 대표 '공식'
    내부 인사 승진 기대한 직원들 기대감↓
    급격한 구조조정·배터리 폭발 등 내부 추스릴 리더십 필요하단 목소리
    •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SDI는 직원들의 유대관계가 끈끈하기로 손에 꼽힌다. 매 분기·매 해 주기적으로 자발적인 모임(OB 모임)을 열어 전현직 임직원들이 회포를 풀기도 한다. 한때 세계 최고의 ‘TV 브라운관’ 기술을 자부했던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최근 안팎으로 시끄러운 그룹과 회사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지난해 말 열린 송년회의 주요 화두는 무엇보다 ‘배터리 폭발’ 사태였다. 매해 벌어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점차 추락하는 회사의 위상을 바라보며 “이번엔 배터리 업(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부임했으면”이라는 모두의 바람을 끝으로 자리를 끝냈다고 전해진다.

      기대가 ‘역시’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삼성그룹이 내홍을 겪으며 인사가 중단된 가운데, 지난 28일 삼성SDI가 그룹 인사의 첫 포문을 열었다. 조남성 SDI 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이 삼성SDI의 신임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전영현 신임 삼성SDI 사장은 대부분 경력을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닦은 ‘반도체 통’으로 분류된다. 삼성전자 메모리연구소 D램2팀장, 반도체총괄 메모리연구소 D램 설계팀장, 메모리 D램 개발실장,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등을 거쳐 2014년부터 DS사업부문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았다. 부임 이전까지 그룹 내 반도체 전문가로 평가받아온 전임 조남성 사장에 이어 다시 ‘삼성전자, 반도체’라는 삼성SDI의 대표이사 부임 관행이 이어졌다.

      삼성그룹의 세계 선두 사업인 반도체의 ‘성공 DNA’를 계열사 곳곳에 심겠다는 기조가 이번에도 반영됐다는 평가다. 앞서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및 그룹 해체 후 계열사 독립경영을 외부에 내세웠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난 첫인사는 이전 기조가 그대로 묻어난 ‘머쓱한’ 상황이 됐다.

      “미전실이 해체되면 계열사 독립 경영이 이뤄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말도 임직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SDI 내부 직원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전문가의 대표이사 부임에 대해 점차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초격차 전략’으로 대표되듯 무엇보다 속도전이 중요한 반도체, IT업과 현재 삼성SDI가 꾸리는 2차 전지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은 성격이 다소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표이사뿐 아니라 주요 임원들이 삼성전자에서 승진을 위해 부임하는 사례도 반복되면서, 내부 직원들의 사기도 점차 저하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삼성SDI의 주력 사업이 돼버린 전기차용 대형 전지 사업만 하더라도 투자는 꾸준히 집행해야 하지만 수익 창출까지는 십여년에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장기 사업”이라며 “삼성전자에서 부임한 인사들이 장기 투자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다보니 투자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단기 성과에 급급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려야 하는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출범 초기 삼성 SDI의 주력 사업은 브라운관 PDP 등 TV패널 생산이었다. 지난 2000년 김순택 삼성SDI 사장 시절부터 OLED, 2차전지, ESS 등 신사업 투자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김 사장이 “이거 아니면 SDI의 미래가 없다“며 그룹 반대를 무릅쓰고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것으로 회자되는 OLED 기술은 반도체와 더불어 이제 삼성 그룹의 대표 먹거리가 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화 이전인 2008년 분사를 통해 분리됐다. 이어 삼성전자가 지분 19.58%를 보유한 삼성SDI에서 삼성전자가 지분 84.8%를 보유한 삼성디스플레이로 이관됐다. 대신 삼성SDI는 삼성전자가 꾸려온 태양전지 사업을 받아왔다. 삼성의 신수종사업이라고 기대받아온 태양광사업은 2014년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삼성 SDI내 케미칼 사업도 SDI케미칼로 분사 후 롯데에 매각했다. 이제 회사의 먹거리는 배터리 중심 사업 구조로 급격히 축소됐다. 이 같은 역사를 겪은 탓에, 아직도 계열사 내에서도 중·대형 전기자동차용 배터리가 이익을 내기 시작하면 언제든 삼성전자로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소손이라는 사상 초유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간 ‘안정성’을 자부심으로 삼아온 내부 직원 사이에서는 “배터리 사업은 단순 IT 조립 산업이 아니라, 화학·소재에 대한 기술력이 병행돼야하는데, 화학 관련 계열사를 전부 외부에 매각하다보니 안정성 문제에 영향을 끼쳤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대규모 빅베스를 통한 구조조정과 사업부 매각을 겪으며 고강도의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회사의 규모와 영향력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임직원들의 로열티도 점차 저하되고 있다. 내부에서도 이번엔 삼성SDI 출신 내부 인사의 승진을 통해 구성원을 다잡고 사기를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저마다의 '하마평'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그쳤다.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안다루던 사업이 없었던’ 삼성SDI가 규모가 줄면서 일정 부분의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한건 모두 동감하지만, 원칙없이 인력을 내보내다보니 회사 경쟁력 자체가 타격을 입었다”라며 “예를들어 중국 쪽에서 수십년간 경험을 쌓아온 인력들을 ‘비용’으로 치부해 구조조정하고, 수십억원을 들여 컨설팅업체의 컨설팅을 바탕으로 중국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중국의 배터리 규제에 제대로된 대응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전문가도 “지난해 삼성SDI가 IR에서 하반기 중국 규제 상황이 해결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현재까지도 해결은커녕 더욱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라며 “‘관리의 삼성’ ‘정보력의 삼성’으로 불리던 시절에 대비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SDI가 중국 진출을 위해 합작사 설립시 중국회사의 지분이 높아야 하는 규제 때문에 ‘만만한’ 파트너로 안경한신그룹을 택했는데, 당국의 규제 이슈가 터졌을 때 안경한신그룹은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라며 "이전처럼 중국 정부에 대한 정보력이 있었으면 애초부터 BYD 등 강력한 파트너와 동맹을 맺고 대응할 무기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뒤숭숭한 분위기는 그룹 내부뿐 아니라 업계 전반으로도 번져가고 있다. 주력사업인 2차 전지 및 신사업으로 진행 중인 ESS 분야에서 연구인력 충원에 나서고 있지만, 해당 전문 인력들이 ‘삼성’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언제든 사업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주된 이유로 언급된다.

      한 업계 리크루팅 담당 관계자는 “관련 사업부의 인력 충원을 위해 전문가들을 수소문해도 대부분 ‘LG’는 몰라도 ‘삼성’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심심찮게 들린다”라며 “2~3년 격차로 평가했었던 자동차용 배터리의 원가경쟁력·수주 현황도 이제 LG와 5년 가까운 격차를 보일 만큼 사업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