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에 움츠린 삼성그룹 인사…'급한 불부터 끈다'
입력 2017.03.21 07:00|수정 2017.03.22 10:12
    24일 전자·물산·생명 등 주요계열사 주주총회 개최
    사내이사 선임 없이 대부분 경영진 ‘유지’
    “現 위기상황 잘 이해하는 경영진 유지…사업적 성과 보여줘야”
    • 삼성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진(CEO)들이 대부분 유임될 전망이다. 총수의 구속수사와 더불어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까지 해체되며 그룹의 컨트롤타워는 사라진 상태다. 사실상 그룹차원의 인사 결정권을 가진 인물과 조직은 없다. 일단 유임된 경영진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복귀까지 각 회사별 시급한 사안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세 회사를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오는 24일 일제히 주주총회를 연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는 이번 주총에서 새로운 이사선임 안건을 상정하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과 권오현 부회장(DS부문), 윤부근(CE부문)·신종균(IM부문) 대표이사 사장의 4인체제가 유지된다. 전자계열사 중에선 유일하게 삼성SDI가 삼성전자 출신의 전영현 사장을 신규 선임하고 나머지 계열사들의 최고경영진 인사는 계획돼 있지 않다.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은 사외이사 2명만 선임할 뿐 최치훈·김신·김봉영 사장과 이영호 부사장 등의 현재 경영체제를 유지한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각각 부사장과 전무 급 사내이사만 선임하고 최고경영진 교체는 하지 않는다.

      삼성은 매년 초 대규모 경영진 인사를 실시했다. 올해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사와 미전실까지 해체함에 따라 사실상 인사를 관할할 컨트롤타워를 잃었다. 과거 인사에서 미전실 주도로 계열사 간 경영진 이동이 이뤄졌다면, 현재 각자도생을 하게 된 각 계열사들을 ‘교통정리’를 할 조직과 책임자가 없어진 셈이다.

      미전실 해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을 이어 그룹의 2인자로 불렸던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은 사임했다. 이어 미전실 팀장급 임원 7명도 퇴사했다.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이 퇴임할 때 ‘고문’ 또는 ‘자문역’ 등 별도의 퇴직 프로그램도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별도의 회사차원의 예우는 없었다. 현재 기존 미전실 임직원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총수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지 못했던 고위 임직원들이 이를 책임지고 사퇴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별도의 예우를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미전실이 급하게 해체하고 고위임원들이 대거 사퇴함에 따라 인사의 방향성을 잡고 컨트롤만한 임원진이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미전실을 대체 할만한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이 부회장이 복귀할 때까지 경영진들은 회사별 시급한 사안들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밝힌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현재 경영진들은 국내외 투자자들 이탈을 막고, 사업적인 성과를 이어가는 데 그칠 것이란 평가도 있다. 지주회사 전환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의 그룹 지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고경영진이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불행 중 다행히도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의 최고호황을 맞아 양호한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주가는 상장 후 최초로 200만원을 돌파했고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갤럭시노트7폭발 사고 여파가 마무리된 후 신제품 갤럭시S8의 출시를 앞두고 있어 투자자들의 기대감 또한 높은 상황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갤럭시노트7의 폭발사고의 여파가 시장의 예상보다 잘 마무리 됐고, 실적으로 나타나는 현재 경영진들의 사업적인 성과가 나쁘지 않은 탓에 경영진 교체와 같은 무리한 카드를 꺼낼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 경영진들은 사업 쪽에 집중해 이 부회장이 현업에 복귀하는 시점까진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룹 지배구조 내에서 역할이 미미해진 삼성물산 및 관련 계열사들은 실적개선이 우선이다.

      제일모직과 합병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던 삼성물산은 합병 시너지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주가는 연일 하락하고 있다. 각 사업부문별 실적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치훈 사장이 시장에 보여줄 카드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그룹차원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어려운 고비를 넘겼지만, 이제는 독자생존에 나서야 하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고민 또한 깊어졌다.

      금융계열사들도 현 경영진을 유지한다. 자살보험금(재해사망보험금) 미지급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대표이사 문책경고를 받았던 삼성생명은 최근 징계수위가 낮아지며 김창수 사장의 연임이 가능해졌다. 삼성화재(안민수 사장)·삼성카드(원기찬 사장)도 현 사장을 재선임 할 계획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그룹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영진을 교체하기보다 이 부회장이 돌아오는 시점까지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경영진이 사업을 계속 이끌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도 있다"며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 부회장이 현업에 복귀하는 시점에서 이들의 성과에 따라 희비도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