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3년 남았다"…투자 '타이밍' 고민 커진 국내 정유·석화업계
입력 2017.03.23 07:00|수정 2017.03.24 14:18
    업계, 2020년 업황 하향 예측…대규모 M&A 효과 물음표
    대우건설 매각·오일뱅크 IPO 시점도 중요해져
    • 지난해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는 우호적인 업황 효과를 톡톡히 보며 높은 영업이익률과 빠른 재무안정성 개선을 이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올 하반기 이후 하향 국면으로 진입, 내년에는 실적 하락 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정유·석화업계는 업황이 싸이클상 정점에 도달, 2020년이 되면 하향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규모 인수합병(M&)이나 시설투자의 결정과 효과, 자금조달과 신사업 전환 등 투자 활동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 진행된 싱가포르 석유화학기업 주롱아로마틱스(JAC) 매각전에선 국내 석화업계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을 연출했다. JAC 인수전에 국내 업체로는 롯데케미칼과 한화토탈이 참여했다. 두 회사 모두 JAC 인수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연계해 아시아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었다. JAC의 주 생산품인 BTX(벤젠·톨루엔·자일렌)의 시황이 좋아진 점도 인수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종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는 미국 엑슨모빌로 결정됐다. 롯데케미칼은 인수 의지가 강했고, 엑슨모빌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2조원을 인수금액으로 제시한 엑슨모빌이 채무 인수가 아닌 전액 현금 인수를 제안하면서 우협으로 선정됐다. 한화토탈은 본입찰에 1조원을 웃도는 금액을 써냈지만, 추가 가격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일찌감치 협상장을 떠났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업체와의 실탄 경쟁에서 버티지 못한 셈이다.

      한화토탈에 정통한 관계자는 “한화토탈의 JAC 인수 의지가 강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매각가가 커지면서 부담이 커졌다”며 “회사 측은 석화업계 호황기가 3년가량 남았다고 보고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1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그 기간 내에 효과를 보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림산업이 뛰어든 미국 최대 규모의 에탄크래커(ECC·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틸렌 생산 방식) 공장 인수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매각가격으로 2조원대를 예측하고 있는데, 대림산업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롯데케미칼을 넘어 국내 최대 ECC 생산업체로 도약하게 된다. 다만 대림산업이 예상하는 가격보다 높아질 경우 역시 인수 효과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 있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대림산업의 여천NCC가 나프타 분해 방식으로 에틸렌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ECC 방식보다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대림산업 입장에선 인수에 성공하면 시장점유율 확대와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 유효기간이 어느 정도가 될 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전반적인 신인도가 개선되고 있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지만 불황에 대비해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또는 내부 정비에 대한 타이밍은 더 중요해졌다. 이는 인수 및 투자에 나선 기업뿐만 아니라 매각에 나서거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부실을 회계에 반영하면서 적자전환을 한 대우건설은 매각이 추진 중이다. 겹겹이 쌓인 악재를 떠안은 상황에서 매각을 추진할 경우 산업은행을 향할 시장 안팎의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주가 기준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지분(50.75%) 가치는 1조3800억원 수준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더라도 2조원의 가격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1조원을 훌쩍 넘는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우건설을 매각할 수 있는 기한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석화업계의 호황이 끝나기 전에 매각을 해야 그나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M&A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아람코가 대우건설 인수 의향을 밝힌 것도 기본적으로 중동 국가들의 플랜트 및 주택건설 사업 내재화 요구에 기반한 것”이라며 “그나마 손실을 줄이며 매각할 수 있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현대오일뱅크 상장도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지주사 체제 전환을 공식 선언하며 4개사로 분할했다. 조선업 불황 속에서 신사업을 위한 실탄, 지주회사의 '시드머니'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현대오일뱅크 상장 카드는 현대중공업의 유동성 확보에 핵심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조5000억원 규모의 현대중공업 자구안에서 하이투자증권 매각은 있었지만 현대오일뱅크 상장은 빠져있었다”며 “현대오일뱅크의 실적이 좋았던 만큼 오너 일가의 상장 의지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몇 년 뒤에도 호실적을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에서 현대오일뱅크 상장 시점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고민도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