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영진 맞이한 SK플래닛, 신사업 발굴과 비용 통제의 '갈림길'
입력 2017.03.23 07:00|수정 2017.03.23 07:00
    박정호 SKT 사장, 무형자산 투자 기조 지속 여부 관심
    그룹 내 중장기 성장 '첨병' vs 방만한 운영 문제
    투자자 '불신' 극복, 시급한 과제로 꼽혀
    • #최근 SK플래닛의 팀장급 인력들은 판교와 테헤란로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신임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부임 이후 진행될 첫 임원 워크숍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다. SK플래닛은 첫 발표 주제를 ‘스타트업’으로 정해 회사의 성장 동력 및 투자 현황을 발표할 계획이다.

      한 스타트업 업체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박정호 신임 사장이 SK㈜에서 주요 인력들을 데리고 SKT로 왔고, 기존 장동현 사장도 SKT 시절 인력과 함께 SK㈜로 옮기다보니 신규 임원진들이 자회사 SK플래닛에 사업 현황에 대한 ‘스터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SK플래닛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장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SK플래닛은 지난 2011년 설립 이후 그룹 내 비(非)통신 플랫폼 분야 진출의 선봉을 맡아 존재감을 키워왔다. 하지만 지난해 36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성과는 신통치 않다. SK플래닛 지분 98.1%를 보유한 SKT에도 손실 여파가 전이돼 투자자들의 성토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SKT가 단기 수익성 회복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룹의 중·장기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회사 본연의 역할이 축소할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에선 SK플래닛이 직면할 첫 변수로 박정호 신임 SKT 사장의 성향을 꼽는다. 그룹내 ‘M&A통’으로 불리는 박 사장은 과거 하이닉스 인수, 신세계텔레콤 인수 등 대규모 설비를 보유한 업체들의 '빅딜'을 주로 담당해왔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플랫폼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더불어 부임 이후 SK텔레콤·SK브로드밴드·SK플래닛이 함께 통신, 사물인터넷(IoT) 분야 본업에 3년간 11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한정된 자원상 SK플래닛의 신사업 투자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시각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평소 자산화할 수 없는 비용 지출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박정호 사장이 SK플래닛의 실적 부진에 대해 장시간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SK플래닛의 대규모 손실에 대해 모회사 SKT 투자자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플래닛은 최근 중국자본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외부 수혈 가능성이 닫혔다. 신임 사장 입장에선 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올 2월에는 SKT 차원의 유상증자 가능성도 일축했다. 박 사장은 "SK플래닛은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인데 링거 주사를 맞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지혈부터 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사업 축소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SK플래닛에 대한 비용 통제가 시작된다면 구체적으로 11번가로 대표되는 유통, 커머스 외 기타 사업의 축소가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다. SK플래닛은 지난해 전체 손실 3600억원 중 약 40%를 간편결제 '시럽' 및 O2O사업 등 커머스 외 사업에서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모바일광고 네트워크 '시럽애드' 사업 부문을 떼어내 디지털광고업체 인크로스에 매각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SK플래닛이 5년간 T맵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성과를 보인 사례가 없다보니 다수의 투자자들 사이에서 방만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라며 "일부 기관에서는 SK플래닛을 여전히 'SKT의 양복입은 고비용 인력이 스타트업을 흉내내는 회사'로 언급하는 등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신사업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졌던 SKT의 '프리미엄'을 고려했을 때, 쉽게 영향력 축소에 나서진 않을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사의 부임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먹거리 발굴이 더뎠던 KT와 통신업 본업 확장에 초점이 맞춰진 LG유플러스에 비교했을 때 SKT는 비통신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로 꼽혀왔다. 최근 O2O업체 헬로네이처 인수 사례처럼 스타트업 및 벤처 업계에서도 ‘엑시트’(Exit) 창구로 각광받기도 했다.

      그룹내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통신업만큼 안정적인 산업이 없다고 보지만, 그룹 내부에서는 조선·해운업 다음은 ‘통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이 공유되고 있다”라며 "SK플래닛을 통한 비통신 분야 확장에 대한 그룹 의지 자체가 꺾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통신 담당 연구원도 “플랫폼 영역에서 SKT의 기술 및 사업 역량은 냉정히 보면 글로벌 대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라며 “다만 국내에서 투자 재원 및 지속적 투자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실패 경험 자체를 해본 유일한 통신사이기 때문에 사업 기조가 완전히 바뀔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지난해는 11번가를 통해 커머스 회사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마케팅 비용 등이 집행돼 손실이 발생했지만 올해는 적자 폭이 감소할 것"이라며 "신규사업을 통한 다양성을 갖추는 게 회사 장기성장에 있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사업 축소는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