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인수 뛰어든 SK하이닉스, 日 우호여론 확보·기술 실사에 '올인'
입력 2017.03.30 07:00|수정 2017.03.30 07:00
    박정호 SKT 사장, 日 경제산업성 방문 등 인수 공들여
    SK하이닉스, 日 FI 공동 참여 거론
    美 WD 동맹구도 및 日의 중국 견제 여부에 판도 갈릴듯
    • SK하이닉스가 최대 20조원까지 거론되는 도시바 매각전에 뛰어들었다. 숙원인 ‘낸드 기술력’ 확보에 그룹 차원의 승부를 걸었다는 평가다. 미국 및 중국계 업체 등 그간 언급돼 온 유력 후보 10여곳도 인수전에 나서면서 흥행 가능성은 커졌다.

      SK하이닉스는 ‘자국 기술 유출에 대한 일본내 반감 여론’을 해소하는데 전략을 집중할 전망이다. SK그룹은 입찰 참여 결정전부터 일본 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는 등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도시바의 3D 낸드 기술력은 인수전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전망이다.

      현지 언론 및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29일 마감된 ‘도시바메모리’ 매각 예비입찰에 SK하이닉스, 대만 홍하이 및 TSMC, 중국 칭화유니그룹,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언급돼 온 주요 후보들이 참여했고 글로벌 사모펀드(PEF) 실버레이크파트너스와 베인캐피탈 등 재무적투자자(FI)도 응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은 예비입찰 마감 후 진행된 현지 기자회견에서 "도시바메모리 가치는 최소 약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생각한다" 라며 "인수 희망자들로부터 지금까지 받은 제안으로 그간 끼친 주가 하락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인수 참여 후보 및 거래 규모는 공개히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마감일 직전 인수 참여를 결정했다. 낸드플래시, 특히 3D낸드에 대한 시장점유율 및 기술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그룹 차원의 결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치킨게임에서는 살아남아 세계 점유율 2위권 업체로 발돋움했지만, 낸드 분야에선 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번의 거래로 글로벌 2위권 낸드업체 도시바의 자산을 확보해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도시바의 특허 및 원천 기술력이 절실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서버 및 PC용 스토리지 등 다방면으로 수익처를 확대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컨트롤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스마트폰'으로 낸드 공급이 한정돼 있다"라며 "특히 과거 도시바와의 소송전에서 약 3조원을 배상한 이후 도시바에 낸드 특허 로열티를 매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초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 소수 지분(20%)을 매각한다고 했을 때는 다른 후보들보다 적은 금액을 써내며 뚜렷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경영권 지분 이상의 매각으로 이어지며 SK하이닉스의 인수 의지도 급변했다. 재무 여력도 자체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재무적투자자(FI)의 도움을 받으면 큰 무리가 없다는 게 회사와 그룹 내부의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측 관계자는 "거래와 관련된 어떤 사항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 구도에선 최소 숏리스트 선정까지는 될 것 같다"라며 "설비를 공동 운영하는 WD와의 주주간 계약 및 올해 상반기 양산 예정인 3D낸드 기술력 파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결국 SK하이닉스의 가장 큰 난관은 기술력 유출에 대한 일본 정·재계 및 국민 여론을 돌려놔야 하는 ‘비가격적 요인’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번 인수전에서 컨트롤타워를 맡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인수의향서(LOI) 제출 이전부터 일본 경제산업성 등 주요 정부 기관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계 FI와의 공동 인수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도 일본 내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선 ‘재무 여력’을 제외한 모든 요소에서 SK하이닉스보다 우위에 선 미국 WD의 인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WD는 도시바의 반도체 설비가 위치한 욧카이치 공장에 이미 50:50의 조인트벤처(JV) 형태로 투자해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일본 측에서 가장 우려하는 ‘기술력 유출’ 문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WD의 유일한 난제는 부족한 자금 동원력이지만 미국계 PE 등 다른 FI와 동맹을 통해 인수에 나설 수 있다. 인수 후보로 꼽힌 일본정책투자은행(DBJ)과 산업혁신기구(INCJ)는 마감 직전 참여를 철회했지만, FI로 공동 참여가 거론되는 만큼 전략적인 변수로 여전히 남아있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중국계 기업에 대한 견제가 현실화할지 여부도 관건이다. 입찰 전 언론을 통해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를 피력해 왔지만, 중국계 자본이 참여하지 않으면 흥행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익명의 도시바 관계자를 빌어 "원전 관련 소송 위험 등을 감안했을 때, (도시바메모리를) 2조엔 이상으로 매각하지 않으면 향후 전망이 서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도시바의 보유 설비 및 기술력에 대한 명확한 평가도 중요한 변수다. 도시바가 매각 후보에게 배포한 투자자설명서(IM)에 따르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의 유형 자산 규모는 약 4조원에 그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최대 20조원까지 거론되는 매각가를 감안하면 감가상각을 고려해도 예상치 대비 현저히 작은 규모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도시바측은 예비입찰 이후 매각에 대한 구체적 일정은 비공개 방침을 세웠다. 향후 숏리스트 선정 시 실사 일정 및 최종 입찰의 구체적 일자를 제공할 전망이다. 다만 도시바가 내년 회계월(3월)까지 매각 완료 방침을 세운 만큼 촉박한 일정이 예고돼 있다. 최대 8~9개월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세계 각국의 독점금지법 문제 해결을 감안하면 올해 6월까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