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숙원'된 도시바 인수, 발빼기 어려운 SK하이닉스
입력 2017.04.17 07:00|수정 2017.04.18 13:03
    낸드 기술력 확보 외 '그룹 정체성' 변화 내보일 기회
    최태원 회장 "본입찰 다른 모습 보일 것" 강행 의사
    일각에선 그룹 컨소시엄 통한 자금조달 가능성도
    • 글로벌 2위 업체인 도시바 반도체 자회사 매각전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후보로 부상한 4개사가 강한 인수 의지를 보이면서 예상가격은 치솟고 있다. 일본 내 부정적 여론 등 비가격적인 장벽도 굳건하다. SK하이닉스의 인수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짙어지고 있다.

      SK그룹 내부의 인수 의지는 여전히 확고하다. 어느덧 도시바 인수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촉구해 온 그룹 ‘근본적 변화(Deep Change)’의 상징으로 격상됐고, 이에 맞춰 인사와 조직 변화도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도시바 인수가 그룹 차원의 숙원 과제가 되면서 인수전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의 반도체 자회사('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 SK하이닉스, 대만 홍하이그룹, 미국 반도체사 웨스턴디지털(WD) 및 브로드컴-실버레이크 컨소시엄 4개사가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도시바는 내달 19일까지 2차 입찰을 마친 후 이르면 6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최근엔 홍하이가 예상가를 대폭 웃도는 30조원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SK하이닉스의 인수 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SK그룹은 자체적으로 약 10조원을 마련하고, 일본내 재무적투자자(FI)와 연계해 약 20조원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 경쟁 외에도 일본 정·관계를 중심으로 반도체 기술 유출 불가라는 정성적 요소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가격, 비가격 조건 모두에서 SK그룹의 인수 가능성이 점점 흐려지는 분위기다.

      외부의 부정적 시선과 달리 SK그룹은 여전히 인수에 자신감을 갖고 협상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최근엔 최태원 SK회장이 직접 언론에 “지금 진행되는 도시바 입찰은 구속력이 없는 넌바인딩 입찰이기 때문에 금액에 큰 의미가 없다”라며 “본입찰에서는 달라질 것”이라며 강한 인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한 그룹 내 관계자는 "최근 홍하이가 30조원을 썼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내부에서 동요가 있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분위기도 전해지고 있다"라며 "입찰 금액을 더 높일지를 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SK그룹에선 도시바 인수가 그동안 거론돼 온 '낸드 기술력 확보'를 넘어 그룹 '정체성' 전환의 계기로 격상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올해 초 최태원 회장은 그룹 경영 목표를 '딥 체인지'로 다시 강조하면서 기존 사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그간 SK텔레콤(통신)·SK이노베이션(정유) 등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움츠린 가운데, SK그룹이 전방위적인 M&A를 추진하는 배경으로도 해석된다.

      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절박하고 처절하게 살아남아 결국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성장사에 고무된 분위기"라며 "도시바라는 대형 M&A 성사를 통해 통신·정유 등 안정적 사업에서 정해진 수익을 얻는 그룹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계기로 삼자는 분위기도 전해진다"고 말했다.

      연초 인사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졌다. 지난 2015년 지주사 SK㈜의 합병 작업이 상대적으로 별다른 잡음 없이 마무리되고, 조대식·박정호 공동 대표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은 수펙스에서 지주사로 이관됐다. 하지만 불과 2년이 안돼 두 사장이 SK㈜에서 각각 수펙스와 SK텔레콤으로 이동하면서 의사 결정 구도가 지주사에서 각 계열사로, 최종적으론 계열사의 투자 활동을 조율하는 수펙스로 재편됐다.

      지주사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내 부사장·임원급 인사 등에서 '전략'라인의 부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SK그룹에서는 주로 관리를 맡는 재무 라인의 힘이 강한 것으로 안팎에서 평가돼왔다. 안정적인 캐시카우 위주의 그룹 사업 구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올해 인사부터 각 계열사별로 신사업을 진행하는 전략 라인에 점차 힘을 싣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최근엔 각 계열사의 M&A를 총괄하는 PM(Project Management)실을 중심으로 투자은행(IB) 및 로펌내 M&A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흡수해 내재화하고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에겐 부임과 동시에 국내 최대 규모 M&A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중책이 맡겨졌다. 외형상 인수 주체인 SK하이닉스는 도시바의 일부 실사만 담당하고, SK텔레콤이 모건스탠리를 자문사로 선정해 인수 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원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박 사장은 인수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일본 내 적대적 여론’을 돌리기 위해 일본 정·관계를 꾸준히 방문하는 등 전방위적인 노력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에선 이번 인수전에서 성과를 보인다면 박정호 사장이 조대식 수펙스 의장에 이어 그룹 내 ‘3인자’ 위치를 공고히 할 기회를 맞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K그룹은 이번 인수전 이전에도 도시바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정보를 쌓아왔다. 지난해 중순경엔 전략적 차원에서 도시바의 소수 지분(5%) 인수도 검토했지만 최종 결정 단계에서 무산됐다. 당시 SK하이닉스 내 미래전략팀이 기술 실사 및 실무를 맡고,  SK㈜가 최종 검토를 맡았다. 이번 인사로 SK㈜의 주요 인력들이 조대식, 박정호 사장과 함께 각각 수펙스·SK텔레콤으로 흩어지면서 TF도 이관된 것으로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 자체 현금 보유 외에도 각 계열사간 'SK컨소시엄'을 이뤄 자금 조달을 꾀할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펙스 내 ICT위원회에 속해있는 SK㈜,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계열사를 중심으로 연합해 약 10조원을 조달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SK그룹 측은 "도시바 인수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