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생명 수요예측, 조금만 차분했더라면...
입력 2017.04.27 07:00|수정 2017.04.28 09:40
    [Invest Column]
    '수요예측 해외 흥행' 정보가 국내 기관 오히려 위축시켜
    의무보유 확약 1곳뿐...장기보유 투자자 못 끌어들여
    • ING생명이 해외 기관투자가 설명회(IR) 및 수요예측을 시작한지 일주일째인 지난 13일. '홍콩에서만 기관 배정분이 완판됐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배당 성향과 재무 안정성에 해외 기관들이 높은 점수를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ING생명이 해외에서만 2조원(확정공모가 기준)이 넘는 기관 수요를 끌어들인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해외 기관 10곳 중 3곳은 4만원이 넘는 공모가를 제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ING생명 기업공개(IPO) 흥행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는 듯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공모가는 공모희망가 밴드 중단 아래인 3만3000원으로 결정됐다. 생명보험사 상장 가운데 삼성생명 이후 처음으로 밴드 안에서 결정된 가격이지만 당초 기대보다는 높지 않았다. 해외 수요예측에서의 열기를 국내에서는 쫓아가지 않은 탓이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국내 174개 기관 중 대다수인 149곳이 3만3000원 이하의 가격을 제시했다. 118곳은 아예 밴드 하단 아래의 가격을 써냈다.

      3만3000원 이하를 제시한 수량은 수요예측에 응한 전체 물량 대비 8%에 그친다. 다만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외 포함 274곳의 기관 중 60%인 166곳이 ING생명 주식 가치를 3만3000원 이하로 평가했다.

      IPO를 통한 주식 분산이 필수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 결국 이들이 ING생명의 공모가를 끌어내린 셈이다.

      왜 이런 온도 차이가 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간 국내 기관들이 생명보험사 상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삼성생명 이후 대부분의 생보사는 상장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연기금·보험사와 운용사 고유자산 계정의 경우 3만3000원 이상을 제시한 경우가 단 1건도 없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내 기관들의 밑바닥 심리엔 해외 수요예측 흥행에 대한 '의혹'도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상당수 국내 기관은 ING생명의 해외 수요예측이 흥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못미더워 했다.

      한 기관 관계자는 "해외에서 수요예측이 흥행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이에 편승해 국내 기관이 높은 가격을 쓰도록 유도하는 건 오래된 전략"이라며 "'허수'를 제외한 실수요가 얼마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기관의 총 신청 수량만 따지면 수요예측 경쟁률은 3.2대 1 정도다. 수요예측엔 일반적으로 허수가 섞여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관들이 '북(book)이 얇다'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이런 와중에 터져나온 '해외 수요예측 흥행'  소식은 오히려 국내 기관들을 위축시켰다는 지적이다. 자신들의 정보로는 기관 수요가 두텁지 않은데, '흥행'이라고 이름이 붙여지니 괴리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활용, 국내 기관 수요를 유도하려는 전략으로 오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수요예측 경쟁률이 3대 1 수준이라면 리스크를 감안해 일정을 연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이를 모를 리 없는 국내 기관들이 과감한 베팅을 포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내 기관들 사이에선 해당 보도가 나온뒤 주관사단이 '수요예측 진행상황을 발설해 마케팅에 활용하지 말라'며 금융감독원의 구두 경고를 받았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이는 미진한 의무보유 확약(락업) 비율로도 이어졌다. 락업을 약속한 기관은 단 1곳, 10만주에 불과했다. 전체 신청 수량의 0.13%에 불과하다. 관례상 해외 기관은 락업을 걸지 않는다.

      수요예측에선 경쟁률과 더불어 락업 비율도 흥행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비슷한 시기 수요예측을 진행한 넷마블게임즈의 경우 전체 참여 기관의 37%인 391개 기관이 신청물량 기준 47%에 해당하는 약 15억주에 대해 최대 6개월의 락업을 약속했다.

      다른 기관 관계자는 "지금 락업 현황으로만 보면 ING생명은 상장 직후 매도 물량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다"며 "배당을 핵심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으면서도 장기보유를 원하는 투자자를 끌어들이지 못한 게 일반 청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