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후순위' 덫에 빠진 기아차
입력 2017.05.02 07:00|수정 2017.05.08 09:20
    대내외 악재 속 판매량 점유율 모두 '후진'
    그룹의 지원은 '현대차' 먼저…"하향 평준화 원인"지적도
    • 기아자동차의 부진은 현대자동차의 부진과 맞닿아 있다. 대내외 악재로 인해 판매는 저조하고 디자인을 내세웠던 혁신 속도는 느려졌다. 내수시장에선 현대차와 경쟁하면서 그룹의 지원은 후순위로 밀리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은 기아차의 그룹 내 위상을 비춰볼 때 성장할 수만은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기아차 재도약의 상징이었던 K5는 이제 '옛날 차'가 됐다. 한 때는 현대차 그룹이 내세운 디자인경영의 성공적인 사례였지만 현재로선 이렇다 할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K시리즈뿐 아니라 기아차의 전반적인 판매량은 감소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시장의 판매부진은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멕시코 공장 가동의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대규모 리콜사태 등으로 인해 충당금을 쌓을 경우 영업이익 감소도 예상된다. 기아차는 미국과 한국에서 출시하는 스포츠세단 '스팅어'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전반적인 수익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이유로 기아차의 올해 실적개선을 전망하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그룹의 맏형 격인 현대차와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모습이다. 신차출시는 비교적 더디고 동급차종의 판매량은 현대차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 세단과 북미형 모델을 중심으로 한 현대차와 달리 기아차는 SUV와 유럽형 모델에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제너럴모터스(GM) 출신의 인력들을, 기아차는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비롯한 유럽 인력들을 주로 영입해 왔다.

      출발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내연기관과 플랫폼을 사용한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2010년 K5 이후 디자인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현대차와의 차별성은 모호해졌다. 기아차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구분 짓지 못한 탓에 그룹의 주력인 현대차와의 경쟁에선 늘 뒤쳐지는 모습이다.

      그룹 지원도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계에선 스팅어의 출시와 더불어 기아차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에센투스(Esentus) 또는 유사한 브랜드를 출시할 것이란 예상이 제기됐지만, 현재까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안착이 먼저라는 판단에서 기아차 자체 브랜드의 론칭을 늦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네시스의 성공여부에 따라 기아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를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나마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던 지난 2009년까진 기아차의 적극적인 행보를 기대할 수 있었다. 정 부회장이 기아차에서 물러나면서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인물과 조직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룹차원에서도 부진한 현대차를 뛰어넘어 홀로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기대하진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 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후로 그룹 내부에서도 기아차에 현대차를 뛰어넘을 만한 적극적인 지원은 부담스러워 한다"며 "이는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하향 평준화하는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폴크스바겐(Volkswagen)은 아우디(Audi), 포르쉐(Porsche)를 비롯한 12개 이상의 완성차 브랜드를 갖고 있다. 각 브랜드마다 고유한 기술과 차별화된 고객층이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 2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현대차그룹과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기아차가  차종을 좀더 세분화하고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해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흥시장의 불안정성과 현대차와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기아차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다"며 "다만 현대차와의 차별성을 가지면서 고객군을 다변화 할 수 있는 라인업 확장 등의 전략은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