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위 지주사에 인수된 1등 증권사의 엇갈린 운명
입력 2017.05.16 07:00|수정 2017.05.16 07:00
    [Invest Column]
    • 2013년 12월24일, 성탄전야.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의 운명이 바뀌었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는 약 1조원을 적어낸 KB금융지주 대신 1조1500억원을 제시한 농협금융지주를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전국 단위 점포망을 갖춘 은행 기반 금융지주회사 중 막내라고 할 수 있는 NH농협금융그룹이 국내 1위 대형증권사를 인수한 순간이었다.

      업계의 우려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자기자본투자(PI)는 물론, 복잡한 파생상품 판매와 기업금융(IB) 부문에서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투자증권을 준정부 특수기관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농협이 잘 품을 수 있을까 의문이 많았다.

      농협금융과 우리투자증권의 만남은 처음엔 다소 어색했다. 실무자들은 옷깃에 달린 농협마크 배지를 멋쩍어 했다. 앞으로 고객 사은품은 농산물만 줘야 하는 것이냐, '첨단 금융회사'의 이미지가 퇴색되는 게 아니냐, '농민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국내 유일 금융투자회사'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기업 이미지에 도움이 되느냐 잡음도 많았다.

      그래도 지주와 증권 관계자들은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국 곳곳 깊숙히 퍼져있는 지역 점포망과 36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농협금융그룹이 증권의 힘이 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농협금융이 증권에 무얼 해줄 수 있느냐'는 의문은 깊어져만 갔다. 지난해 초대형금융투자회사 제도 도입이 언급되고,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잇따르며 증권사의 자본확충이 화두로 등장했을때, NH투자증권은 침묵해야 했다.

      미래에셋대우가 자기자본 기준 국내 1위 증권사로 대두하고, 한국투자증권·KB증권·삼성증권 등 다른 경쟁사들이 대주주의 도움을 받아 자본 규모를 끌어올릴 때 NH투자증권은 자력으로 낸 이익을 곳간에 쌓으며 2위를 간신히 유지했다.

      앞으로도 당분간 지주에서 증권에 자본을 보충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농협금융지주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이 이미 120%에 달하는데다, 지난해 농협은행 대규모 손실로 자금 여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런 가운데서도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 3020억원, 순이익 2360억원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농협금융 계열사 중 이익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 증권업계 전체적으로도 순이익 규모가 메리츠종금증권,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3위권에 해당하는 호실적이었다.

      적지 않은 현금도 지주에 올려보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3월 총 1206억원의 배당을 결의했다. 지난해 순이익의 절반이다. 이중 다시 절반인 553억여원이 농협금융지주의 몫으로 배정됐다.

      이런 NH투자증권에 지주가 부여한 성적표는 'C'였다. A부터 D까지의 등급에서 하위에 해당한다. 경영성과가 미흡했다는 판단이다. 대우조선해양 리스크 관리 실패로 지난해 상반기 대규모 적자를 낸 농협은행은 'B'를 받았다. 합리적이라고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결과다.

      애써 외부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있지만, 증권 내부에서 동요가 상당했다는 전언이 들려온다. 인재가 자산인 금융회사에서 고급인력들의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줄어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심지어 NH투자증권은 상장사다. 회사의 경쟁력 약화는 농협금융에만 피해를 주지 않는다. NH투자증권 지분의 50.28%를 기관 및 일반투자자들이 들고 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의 지분율만 7.41%에 달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등 금융그룹에 인수된 꼴등 대형IB(옛 현대증권)와 꼴등 금융그룹에 인수된 일등 대형IB(옛 우리투자증권)의 운명이 어떻게 갈리는 지 지켜보는건 한국 증권업의 역사에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