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안정기 접어든 시멘트 업계, 본격적인 체력 기르기 시작
입력 2017.05.17 07:00|수정 2017.05.17 07:00
    현대시멘트 끝으로 1차 재편 일단락…쌍용·한일 양강 체제
    안정기는 길지 않을 듯…사모펀드 발 2차 산업재편 불가피
    회수 필요 PEF·마지막 기회 SI…다음 재편 전 경쟁력 개선 필요
    • 시멘트 산업은 현대시멘트 매각 완료로 1차 재편이 일단락되며 안정기에 돌입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을 전망이다. 여전히 시장 참여자가 많고, 사모펀드(PEF)들은 호시탐탐 회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전략적투자자(SI)들도 대규모 투자가 옳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시멘트업체들은 다음 재편기에 앞서 본격적인 체질개선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년간 시멘트 업계는 경영권 변동으로 어수선했다. 2012년 한앤컴퍼니의 쌍용양회 인수를 시작으로 2015년 삼표시멘트(전 동양시멘트), 2016년 한라시멘트(전 라파즈한라시멘트) 등 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이 이어졌다. 마지막 경영권 매물로 꼽히던 현대시멘트는 SI인 한일시멘트가 가져갔다. 한앤컴퍼니는 쌍용양회 2대주주 지분을 인수했고, 루터PE도 삼표그룹과 함께 삼표시멘트 2대주주 지분을 사들였다.

      7개사 과점 체제였던 시멘트 업계는 숙원이던 업체 통합으로 시장 재편을 이루게 됐다. 쌍용양회와 한일-현대시멘트가 양강체제를 갖췄고, 나머지 업체들도 경쟁부담 완화에 따른 과실을 나누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황금비율’로 분할돼 균형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 그러나 PEF가 대거 시장에 들어와 있는 만큼 수 년 내 업계 재편 바람은 다시 불게 될 전망이다. 전방산업의 호황이 언제 꺾일지 모르고 생산능력 과잉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PEF들은 다음 재편기에 앞서 인수 회사의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두는 것이 중요하다. 거금을 들여 시장에 참여하거나 점유율을 늘린 SI들은 기업가치 개선을 통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야 한다.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한 SI들도 다음 기회를 잡기 위해 기초 체력을 다져둘 필요가 있다. 과점 사업자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덩치를 키우지 못하면 수위권 업체와 격차는 벌어지고 경쟁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몇 년간 숨가쁘게 산업 재편이 이뤄지며 이상적인 점유율 구도가 마련됐다”며 “PEF들이 시장에 많이 참여한 상황이라 또 한번의 시장 재편은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 시장 주도업체의 수는 더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앤컴퍼니는 쌍용양회 인수 후 대한시멘트, 한남시멘트도 사들이며 시장을 주도해왔다. 이미 새로운 과점체제가 완성된 상황이라 더 이상 확장 전략은 펴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보다 최근엔 재무구조 개선과 시멘트 사업 집중화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비주력 계열사 쌍용머티리얼과 쌍용에너텍을 매각했고, 쌍용자원개발과 쌍용해원은 흡수합병 해 시너지효과를 키웠다. 연초부터 대한시멘트 상장을 검토하며 회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과거 판가 조절을 통해 시장 주도의지를 보여왔던 한일시멘트는 현대시멘트 인수로 쌍용양회와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점유율 확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존 사업장은 물론 현대시멘트의 공장도 내륙이라는 점이 아쉽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선 화학적 융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표그룹은 삼표시멘트 인수로 골재부터 시멘트, 드라이몰탈까지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안정적 캡티브마켓(전속시장)도 가지고 있다. 추가 지분을 확보하며 주당 투자 단가를 낮췄음에도 여전히 적정가 이상을 썼다는 지적이 많다. 함께 인수했던 산업은행PE의 회수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루터PE까지 2대 주주로 맞았다. 2강 틈바구니 사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당면 과제로 꼽힌다.

      한라시멘트는 베어링PEA 컨소시엄에 인수된지 갓 1년이 됐지만 다음 산업 재편을 촉발할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10%대 초반 점유율을 가진 5위권 업체로 다른 시멘트사가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베어링PEA의 추가 M&A나 장기 투자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시선이다. 기업가치를 유지하면 아직 해안사를 가지지 못한 한일시멘트나 성신양회 등이 관심을 가질 만 하다.

      성신양회의 입지는 애매해졌다. 다른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M&A에 나서고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동안 빚을 갚기 급했다. 작년말 단기차입금은 3000억원에 육박하고 현금성자산은 거의 바닥이다. 전방산업의 온기가 남아있는 올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처지다. 레미콘 사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경쟁사 대비 우위요소로 꼽히는데 올해는 그 사업장 일부를 매각하려다 철회하기도 했다. 재무구조 개선 필요성은 있지만 업계 재편 과정에서 실기(失期)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점체제의 막내였던 아세아시멘트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표시멘트 인수전에선 한일시멘트와 손을 잡으며 확장 의지를 보였으나 손에 쥔 것은 없었다. 한일시멘트가 현대시멘트를 인수한 터라 앞으로 함께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무여력은 있지만 다음에 나올 대형 M&A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