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금융위 줄다리기에 표류하는 18兆 벤처예산
입력 2017.06.26 07:00|수정 2017.06.26 07:00
    두 부처 산하기관 母펀드 총 18조
    "예산 일원화" vs "성격 판이" 엇갈려
    정부發 대형펀드에 업계 '우려'
    • 중소기업벤처부와 금융위원회가 벤처투자 주도권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각 기관 산하의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을 통합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벤처투자 업계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벤처사업 관할권을 놓지 않으려는 두 부처 간 눈치싸움이 거세지면서 정작 논의돼야 할 과제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벤처펀드 출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한국벤처투자와 금융위원회 산하 한국성장금융이다. 한국벤처투자는 모태펀드를, 한국성장금융은 성장사다리펀드를 모(母)펀드로 운용하고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부(部)로 승격이 결정된 중소기업청이 벤처업계에 대한 입김을 키우려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정부의 (모태펀드-성장사다리펀드) 통합 검토를 언론에 귀띔한 장본인도 중소기업청 내부 관계자라는 얘기가 업계에 돌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투자 관할권을 둘러싼 중소기업청(現 중소기업벤처부)와 금융위원회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금융위는 2013년 성장사다리펀드를 만든 직후 소관 영역인 신기술금융회사 라이선스 규제를 완화하며 영향력을 넓혀왔다. 새롭게 벤처캐피탈 업체를 차리는 곳은 물론, 기존 업체까지 창업투자회사보단 신기술금융회사로 눈길을 돌렸다. 창투사나 신기사 라이선스를 받으면 벤처투자시 각종 세제 혜택이 주어져 국내 대다수 벤처투자사가 해당 라이선스 중 하나를 취득하고 있다. 그간 금융위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는 듯 보였던 중소기업청이 부(部) 승격을 계기로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 중소기업벤처부는 벤처투자 예산을 일원화해 출자사업 및 펀드운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벤처자금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게 벤처투자 재원 일원화의 주요 근거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일자리 확충 및 선제적인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선 벤처투자 자금줄 넓히기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민간 출자금을 포함해 각각 13조원, 5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두 모펀드를 합쳐 18조원 규모의 '메가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펀드 당 출자금이 증가하고 펀드 사이즈가 커지면 한 스타트업이 문을 연 직후부터 성장 궤도에 오르기까지 단계별로 지속적인 투자 집행이 가능해져 벤처·스타트업 목표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벤처업계 관계자는 "정부 내에선 불어날 벤처투자 예산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는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며 "10년 넘게 펀드 사업을 하며 이런 저런 곡절을 겪은 중기부가 적임자라는 게 중기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성장금융과 금융위원회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재원 통합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 모양새다.

      우선 각각이 운용하는 자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적당한 통합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모태펀드는 문체부·미래부 등 10여곳의 정부 부처로부터 자금을 받아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인 만큼 공적 재원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성장사다리펀드의 주요 출자기관은 KDB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과 은행연합회 소속 18곳의 시중은행 등으로 구성돼 민간 재원으로 분류된다.

      하나의 대형 모펀드를 만들어 개별 펀드 사이즈를 불리는 것에 대한 부작용도 거론된다. 벤처펀드에 출자할 여력이 있는 민간 출자자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통합 모펀드를 만들어 출자사업을 통해 조성될 개별 자펀드의 사이즈도 불리면 벤처투자 자체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펀딩을 고려하면 국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새롭게 조성된 벤처펀드 가운데 절반 정도는 정책성 자금이 담당하고 있다.

      한 대형 벤처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모펀드와 민간으로부터 매칭 출자받아 펀드를 조성해야 하는데 개별 펀드 규모가 커지면 민간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자금의 규모도 늘어나야 한다는 말"이라며 "민간 출자자는 한정적인데 어디서 돈을 받아온다는 말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 현실과 동떨어진 구상이라는 전언이다.

      모태펀드와 중소기업벤처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한국벤처투자와 중기부가 벤처자금을 모두 쥔다면 VC들 사이에서 줄서기 관행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도 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이런 저런 뒷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두 기관 모두 자세를 낮추지 않고 있어 결론이 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재원 통합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통합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통합 결정 여부와 관계 없이 벤처투자 업계에선 이번 논란을 '소모적 논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늘어난 벤처투자 예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 선제적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밥그릇 싸움'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다. 투자처가 없는 출자분야를 편성하거나 지나친 규제로 투자를 어렵게 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예산만 늘린다면, 제2의 네이버·카카오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주도권 다툼을 하는 와중에 기재부가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모태펀드에 1조4000억원을 추가 출자하기로 결정해버렸다"며 "무턱대고 예산만 늘리는 것만이 답이 아니란 지적에도 불구, 관련 부처들은 주도권 다툼을 하느라 진짜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어디에 예산을 몰아주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며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벤처투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금 시점에선 '정부 주도의 대형펀드'가 가진 한계점을 인식하면서 민간자금 또는 해외자금의 매칭을 유도하는 방식을 더 고민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