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IT 전문가 없나요"…쏟아지는 러브콜·짐 싸는 애널리스트
입력 2017.07.04 07:00|수정 2017.07.05 10:03
    오너 사재 투자, 기업 신사업 발굴, PE,VC 등 IT 전문가 수요 폭발
    리서치센터 몸집 줄이는 증권사들, 금감원 표적으로 이어지며 사기 저하
    "보고서 질 저하로 이어질 수도"
    • 반도체·IT 산업이 ‘슈퍼 사이클’을 맞아 증권가 관련 산업 애널리스트들의 몸값도 뛰고 있다. PE, VC 투자 영역은 물론, 중견·중소 기업 오너 등 개인들도 이 분야를 오래 담당한 애널리스트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비용만 쓰는 부서'라며 단행된 증권사의 푸대접과 일부 사건으로 부풀려진 애널리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지친 이들은 새 오퍼를 받을 때마다 미련 없이 여의도를 떠나는 모양새다. 관련 분야 애널리스트의 '품귀현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약 20년가까운 경력을 쌓은 중견 증권사 A 연구원은 퇴사 후 아예 전업 투자사를 차릴 예정이다. 중견 가구업체 E사 등에서 초기 운용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엔 대형 증권사 IT분야 팀장급 애널리스트가 신생 자산운용사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T사의 IT 담당 애널리스트가 국내 반도체 소재사 내 투자 전담 조직으로 스카우트 됐다. 또 다른 중견급 증권사의 전자부품 연구원도 중소 IT회사의 투자 업무를 맡았다. 어느 중소 증권사 스몰캡(전자부품) 팀장은 사모펀드가 인수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배정됐을 정도다.

      이처럼 수요 측면에서 IT산업 전문가들을 찾는 기조가 이어지며, 이들의 몸값은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올 초 인베스트조선이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 25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투자은행(IB), 컨설팅, 회계사 등 금융계 인력보다 산업계 인력 비중을 높이겠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한 대형 PEF운용사는 "피인수기업의 확장성을 고려했을때 이제 재무적 시각에서 벗어나 산업 전문성을 보강해야 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여기에 반도체·OLED 디스플레이 호황이 이어지며 수혜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사뿐 아니라 국내 중견·중소 부품소재사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돈을 쌓아둔 중견·중소 기업들은 사내에 투자 조직을 꾸려 초기단계 기업에 대한 M&A, 지분투자에 나서고 있다.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는 문호가 열린 셈이다.

      최근 들어 중견기업 오너 등 자산가들도 뭉칫돈을 들고 투자처를 찾고 있다. 여의도 내에선 이들과 애널리스트를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의 활동도 다시 활발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증권사 전자·IT 담당 연구원은 "수익률 10%까지는 기본 연봉만 받고, 10% 이상부터는 성과의 10%를 받는 10/10 계약이 일반적이고, 일부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 내 산업 전문가들에겐 10/20계약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올 상반기만 해도 반도체·IT 대형주 6~7개만 담아도 50% 수익은 쉬웠다"라며 "100억원을 굴리면 상반기 만에 개인 몫으로 8억원이 떨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스타 애널리스트들이 쏟아지는 러브콜에 자리를 뜨면서 증권가에선 애널리스트 간 연쇄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증권사들은 여전히 리서치센터에 대한 상시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여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증권사들의 산업분석력에서 '질적 저하'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중소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실력있는 애널리스트들은 떠나고 있고, 일부 중소형사들은 그 자리를 대체 인력을 스카웃하는게 아니라 주니어 인력로 채우고 있다"라며 “긍정적으로 보면 "삼성전자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라며 기회를 주면서 빠르게 키운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결국 '열정 페이'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애널리스트들이 미련 없이 여의도에서 발길을 돌리는 이유로 이전 같지 않은 처우도 꼽힌다. 약 10여년 전 평균 연봉은 큰 걸로 세 장(3억원), 스타 애널리스트들은 열 장(10억원)까지도 받았다던 호황기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애널리스트들은 “장이 당시 대비 1/3 토막 난 만큼, 정확히 연봉도 1/3 토막났다”고 입을 모은다. 이젠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 내에서도 3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들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전언이다. 대형 증권사인 S 증권사도 애널리스트들의 연봉 상한선을 3억원으로 제한했다고 알려졌다.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엔 중소형 증권사에서 스타 애널리스트를 키우면 대형 증권사에서 웃돈을 줘가며 스카우트해왔고, 이로 인해 인력을 지키려는 중소형 증권사는 남아있는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을 올리고, 그 온기가 대형사 연봉협상으로까지 퍼졌던 선순환이 있었다"라며 "요즘은 중소형사는 인력이 나가도 충원을 안 하고, 대형사는 그걸 핑계로 직원들 연봉을 묶어두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과거 IT, 반도체가 불황일 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회사 소속 인력을 증권가로 스카웃해서 단기적으로라도 내부 인맥 및 정보를 활용했지만, 지금은 산업이 호황이다 보니 회사에 남아서 받는 연봉이 더 높다”라며 "사실 증권사가 돈을 더 투자하면 되는 일인데, 증권사들도 '돈을 못 벌어다 주는' 리서치 분야엔 투자를 안 하고 있고, 결국 그 부담은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괴감을 토로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최근 금융감독원에서는 올 9월 시행을 앞둔 '리서치센터 선진화 방안' 점검을 위해 각 증권사에 대한 실사에 나서고 있다. 일부 증권사엔 팀장급 인력들이 회의를 열어 애널리스트들의 연봉 산정 기준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보고서 작성 횟수, 보고서의 질, 투자의견의 적정성 등을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수를 산정하라는 지침이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이미 사내에서 자체적으로 연봉 제한을 하고 있는데 국가까지 우리 연봉을 깎으려 나섰다"는 쓴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