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SK하이닉스 법률자문, 로펌간 눈치싸움 시작
입력 2017.07.05 07:00|수정 2017.07.06 11:01
    SK하이닉스 법률자문 사장 자회사로 이동
    두둑해진 곳간, 기술 확보 필요성↑…로펌들 관계 쌓기 '재개'
    • SK하이닉스의 법무 분야를 총괄해온 수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각 로펌들의 고객사 확보전이 시작됐다. SK하이닉스는 그간 M&A 시장에 자주 등장한 주요 고객은 아니었지만, 반도체 호황기를 맞아 현금이 두둑히 쌓이며 재무 여력은 충분해졌다.

      도시바 인수에 간접적으로 참여해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낸드 플래시'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도시바 이후에도 M&A 시장에 꾸준히 등장할 것이란 기대감은 커진 가운데 각 로펌들의 SK하이닉스발(發) 거래를 따내기 위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김준호 경영지원 총괄(사장)을 분사가 결정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초대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이석희 사업총괄 사장이 공석인 경영지원총괄 업무를 겸직하게 됐다. SK하이닉스는 분사가 거론된 시기부터 "사내 무게감 있는 인사가 이동한 점이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아닌 본격적인 육성 의지를 보인 사례"라고 언급해왔다.

      다만 반도체 업계 및 그룹 내부에선 SK하이닉스측의 설명에 반신반의한 반응도 있다. 파운드리 사업부에 힘을 싣는다기보다 SK하이닉스 및 그룹내에서 기술분야 인력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려는 분위기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김준호 사장은 지난 2004년 SK그룹 윤리경영실 부사장으로 입사해 SK에너지, SK텔레콤을 거쳐 2012년부터 SK하이닉스 사장으로 재직했다. 서울지검·대검찰청·법무부 등을 거친 부장검사 출신이다. 과거 SK글로벌 사태와 소버린과의 분쟁을 겪은 SK그룹이 대외적으로 윤리경영실을 신설하며 영입한 첫 인사로 화제가 됐다. SK에너지,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거쳐온 계열사에서 법무 관련 업무를 총괄해왔다.

      로펌업계에서는 그가 법무분야 수장으로 활동할 당시 SK하이닉스 관련 딜(Deal)에 태평양이 우선순위를 부여 받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인수는 무산됐지만 약 3년 전부터 SK하이닉스가 TF를 꾸려 도시바의 일부 지분확보를 통한 협력을 검토했었고, 당시 태평양이 법률 자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SK하이닉스는 M&A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D램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이어지며 수익성 회복이 쉽지 않았고, 지배구조 상 SK텔레콤의 자회사로 그룹내에선 손자회사로 위치하다보니 국내 매물들의 인수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반도체 호황을 맞이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회사가 축적해놓은 2조원규모 현금에 더해 올해 예상되는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5조원을 넘는다. 자체적으로 도시바 인수자금 3조원을 충당하고, 설비 투자 7조원을 사용하고도 현금을 비축할 수 있다.

      ‘낸드플래시’라는 고질적인 약점도 뚜렷하다보니 투자 방향성도 명확하다. 업계에선 도시바 인수 이후에도 낸드분야에서 컨트롤러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과의 M&A 혹은 JV 등 협력 시도는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으로 불황이 찾아올 때 극복할 수 있는 기술력에 투자하는 등 ‘얼마나 돈을 잘 쓰는지’ 여부가 반도체사들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며 “낸드 분야에서 D램만큼 영향력을 보이지 못하는 SK하이닉스도 R&D 투자 뿐 아니라 기술 확보를 위한 M&A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SK그룹 내부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특정 로펌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직까지 없지만 IT 관련 자문은 태평양, 광장을 선호하긴 했었다"라며 "계열사내 법무분야 수장 성향이 일정부분 자문사 선정에 영향을 끼쳐온 점은 어느정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