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채무계열 부채 큰 産銀, 대기업 대출채권 세일 예고
입력 2017.07.20 07:00|수정 2017.07.21 10:02
    경제팀 인선 마무리, 정책 본격화
    시장 미비·이해 관계 조율은 과제
    • 새 정부의 경제팀 인선이 마무리 되면서 슬슬 산업은행의 역할모델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소기업 지원 확대 흐름과 정부 정책에 따른 주채무계열의 부채 감축 압박을 감안하면 대기업 자산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일찌감치 유동화나 자산교체 등 다양한 대기업 대출채권 축소 방안 수립에 돌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을 금융위원회 수장으로 낙점하며 경제팀의 마지막 단추를 꿰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와 상시 기업 구조조정 체제 구축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밝혀 왔다. 주택담보대출로 편하게 영업해 온 시중은행의 기업금융 역할을 강화하고,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과도한 위험 부담은 완화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개혁 공약의 하나로 지주회사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지주사 부채비율 한도를 200%에서 100%로 낮추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황이다. 지주사 부채 상환이 은행들의 대출자산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주채무계열에 대한 관리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성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선 주채무계열 선정 및 금융회사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의 덩치가 크다고 연명시키기 보다는 성장 가능성 있는 곳에 재원을 돌리는 옥석가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국민연금도 대기업 투자 비중이 높다고 타박받는 상황이다.

      굳이 이런 정부 시책이나 시대적인 흐름이 아니라도 산업은행 스스로도 자산 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올해 선정된 36개 주채무계열 중 10곳의 주채권은행을 산업은행이 맡고 있다. 그간 대우조선해양과 STX그룹 등 과도한 계열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문제가 됐던 만큼 계열별 자산 축소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물론 위험 관리 측면에서도 일부 대기업 계열의 익스포저를 축소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를 통해 여유가 생기면 중소기업 등 지원이 필요한 분야로 재원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발행시장실 등에서 대기업 계열 익스포저 축소를 위해 대출자산 매각이나 타 금융회사와의 자산 교환, 자산 유동화, 토탈리턴스왑(TRS)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2금융권이나 증권사 등 일부 금융회사들도 벌써부터 산업은행으로부터 풀릴 자산들에 높은 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던 우량한 채권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경우 그 금융회사의 건전성이나 평판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은행의 대기업 계열 자산 축소는 불가피하지만 얼마나 원활히 이뤄질 지는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단순히 채권을 타 금융회사에 매각하는 방식은 현재로선 추진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아직 대출채권 세컨더리마켓(Secondary market)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국가계약법의 적용을 받다 보니 다른 금융회사와 매각 혹은 자산 교환에 대한 의견 합치가 이뤄지더라도 곧바로 실행할 수는 없다. 나라장터를 거쳐야 한다. 산업은행은 대출채권 세컨더리마켓 형성을 위해 정부의 법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적당한 자산을 발라내는 것도 녹록지 않다. 시장의 관심은 아주 우량한 기업의, 적절한 이윤이 보장되며, 만기도 넉넉하게 남은 자산에만 모아질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시중은행까지 끌어들이려면 이런 자산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는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는 자산들이다.

      대기업 차주들은 대주가 바뀌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산업은행과 거래 했는데 권리자가 저축은행으로 바뀐다면 괜히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으로선 자산 처분 시에도 차주들과 협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분간은 자본시장을 통한 유동화 방식의 자산 정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은 최근 현대제철에 대해 가지고 있던 4000억원 규모 채권을 유동화해 시장에 유통시키기도 했다. 우량 증권사가 거래 상대방으로 나선다면 이해 관계자들의 불만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대형 IB를 앞둔 증권사들은 하반기 기업금융 업무 확대 의지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