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고용 위기…방관도 지원도 어려운 정부
입력 2017.08.25 07:00|수정 2017.08.24 18:49
    한국GM, 내수 시장 축소에 생산 기지로서 매력도 줄어
    産銀과 협약 10월 종료…GM 철수 시 30만 일자리 위기
    정부 관망 어렵지만 실효성 있는 조건 제시도 어려워
    결국 회사 경쟁력 문제…점진적 규모 축소 필요성 지적도
    • 한국GM은 국내외 시장 입지 축소로 수년째 적자를 냈다. 글로벌 전략 수정에 나선 GM 본사가 한국 사업장을 철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용 확대가 지상과제인 정부로선 GM의 한국 철수를 보고만 있기 어렵지만 먼저 제시할만한 당근은 마땅치 않다. GM의 점진적인 한국 사업축소나 시장 철수를 기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제임스김 한국GM 사장이 임기 만료 전 사의를 표하면서 GM의 한국 시장 철수 징후라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GM은 오는 10월이면 산업은행과 맺은 협약도 종료돼 지분 매각이나 자산 처분 등 중요 결정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철수 가능성에 대해 묵묵부답이던 GM 본사는 17일 한국GM 후임 사장으로 카허 카젬 GM 인도 사장을 선임했다. 생산분야 전문가인 카젬 사장은 회사의 수익성을 개선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회사 역시 철수설 진화 가능성에 기대를 드러냈다.

      카젬 신임 사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녹록지 않다. 한국GM은 국내 완성차 3위 업체의 위상은 옅어지고 있고, 본사의 글로벌 사업장 축소로 수출로도 좁아진 상황이다.

    • 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도 국내외에서 고전하는 등 완성차 업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시기의 문제일 뿐 철수를 고려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더라도 완성차 및 금융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 소비자의 차량 선택권이 다소 좁아질 순 있으나 대체재는 많다. 작년 말 기준 3조원에 달하는 한국GM의 차입금도 모두 본사에서 빌렸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GM 직원 1만6000명, 협력업체 포함 30만명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협력사들은 이미 은행권의 여신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용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 정부로선 GM의 한국 시장 철수를 관망할 수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GM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도 많지 않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주주일 뿐 채권이 없어 채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주주권을 행사해 회사를 압박하거나 협약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경쟁력 하락이나 관리 부실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어 직접 경영권을 확보할 수도 없다.

      정부를 대리하게 될 산업은행이나 GM 본사 모두 패를 감추기 위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보다 아쉬운 쪽은 정부다. 한 정부 관련부처 관계자는 최근에야 경제팀 구성 이뤄졌고 종합 정책 방향도 설정되지 않아 이와 관련한 논의조차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GM은 높은 인건비를 경영상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고 있다. 정부가 임금 일부를 보전해준다면 GM의 한국 사업 유지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꺼내기 어려운 카드다. 지원 명분도 없거니와 국내에 손을 벌릴 만큼 GM 본사의 자금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직원들도 정부의 자금 지원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GM은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 금융 지원, 부지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을 받아 왔지만 추가로 정부가 한국GM에 제공할 만한 카드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가 한국GM을 인수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으나 인수후보는 마땅치 않다. 내수 시장 축소에 고심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설비와 인력을 늘리려 할 가능성은 크지 않고, 나머지 완성차 회사는 인수 여력이 없다. 정부가 기업의 팔 비틀기에 나설 수도 없다. 한국GM 3대 주주인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움직임은 잠잠하다.

      정부 입장에선 한국GM의 철수를 받아 들이기도 어렵지만 실효를 거둘만한 방도가 마땅치 않다. 공은 GM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GM이 한국 시장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점치는 의견도 없진 않다. 기술력이 우수하고 친환경차 등 GM의 신사업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 10만대 이상의 시장을 놓치는 것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GM은 과거엔 철수설이 날 때마다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증권사 자동차 담당 연구원은 “한국GM은 궁극적으로 더 큰 시장이 있는 중국 사업장과 통합될 확률이 높다”면서도 “아직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있어 앞으로 몇 년간은 한국 사업장을 유지할 만한 유인은 있다”고 말했다.

      결국 GM의 한국 사업장 유지 문제는 회사가 그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스스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이거나 덩치를 줄여 효율성을 키우는 형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원들의 고통 분담 필요성도 제기된다. GM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더라도 몇 년간의 시간은 벌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보다는 한국GM 스스로 한국 시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직원들이 고통 분담에 나서고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사업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거나 새로운 차종을 들여와 경쟁력을 높이는 등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