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시멘트 회수 급한 베어링…1년새 달라진 재무·시장상황 부담
입력 2017.09.01 07:00|수정 2017.09.04 18:22
    인수 1년여 만에 다시 매물로…합병 및 리캡으로 사전작업
    펀딩 나서는 베어링, 한국 부진에 한라시멘트 조기 매각 나서
    업계 통합 소기 성과·전방산업 불투명·급변한 재무구조 부담
    • 베어링 프라이빗 에쿼티 아시아(BPEA)가 한라시멘트 투자 1년여 만에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새 블라인드 사모펀드(PEF) 결성에 앞서 좋은 투자실적(트랙레코드)을 쌓으려는 의도라는 평가인데 인수전 열기는 아직 잠잠하다. 굵직한 인수합병(M&A)으로 업계 통합이 어느 정도 실현돼 추가 M&A의 필요성이 낮아진 영향이다. 짧은 PEF 경영기에 회사의 차입금이 크게 늘어난 점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28일 M&A 업계에 따르면 한라시멘트 매각주관사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인수의향을 보이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서(IM)를 발송하고 있다. 아세아시멘트, 루터어소시에잇코리아 등이 잠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르면 다음달 중 예비입찰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어링PEA는 지난해 4월 글랜우드PE와 함께 한라시멘트를 6300억원에 인수했다. 글랜우드PE가 인수목적회사(SPC) 격인 라코의 전환사채(CB)와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각각 2000억원씩 인수하고 베어링PEA가 라코에 1800억원을 증자했다. 나머지는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다.

      라코는 올해 3000억원 가까운 차입금을 새로 일으켜 글랜우드PE 보유 CB를 전액 상환했고, 베어링PEA는 회사와 함께 RCSP를 절반씩 인수했다. 글랜우드는 회수에 성공했고 베어링PEA는 인수 1년만에 한라시멘트 단일 지배주주에 올랐다.

    • 베어링PEA가 한라시멘트 지배권을 확보한 직후 매각을 추진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관련 업계에선 베어링PEA의 새 블라인드 PEF 결성을 위한 사전 작업이란 의견이 많다.

      베어링PEA는 내년 중 새로운 아시아 투자 PEF를 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결성한 6호 PEF(Baring Asia Private Equity Fund VI, 40억달러)보다 더 큰 규모를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출자자(LP)로부터 펀드 자금을 받기 위해선 여러 나라에서 좋은 투자실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베어링PEA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선 오래 된 포트폴리오부터 회수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인도에선 시멘트 회사 라파즈인도 소수지분에 투자했다가 회수까지 마쳤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PEF의 투자가 빈번해진 한국에선 마땅히 내놓을 성과가 없다. 지난해 로젠택배 매각은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고, 인수 후보였던 CVC캐피탈파트너스와 법적 다툼도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로젠택배 자회사 KGB택배를 팔았지만 이 역시 소송에 휘말린 바 있다. 교보생명의 투자회수도 언제가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베어링PEA로선 한라시멘트가 가장 빨리 회수 성과를 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다. 매각 개시 전 라코와 한라시멘트를 합병해 차입금 부담을 회사로 옮겼고, 회사는 2000억원의 차입을 일으켜 베어링PEA에 배당했다. 최근 수년간 이뤄진 시멘트 회사 M&A가 전방 산업의 호황, 풍부한 시장 유동성, 업계 통합 명분 등이 어우러지며 흥행 양상을 보였던 점도 긍정적이다.

      베어링PEA 측은 한라시멘트 보유 광산은 앞으로도 수십년간 채굴이 가능하고 설비간 연계가 잘 이뤄져 있어 자본적지출(CAPEX)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장이 해안에 있어 내륙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유효하다. 다른 잠재 경영권 매물인 쌍용양회에 비하면 가격 부담도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한라시멘트 매각이 앞선 사례처럼 흥행을 이어갈 것인지 점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쌍용양회에서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라파즈한라시멘트(현 한라시멘트)에 이르는 M&A는 시멘트 업체가 아닌 곳을 새 주인으로 맞아 업계 통합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올해는 한일시멘트 컨소시엄이 현대시멘트를 인수하며 과점 사업체 한 곳이 줄었다. 자연스레 예전보다 시멘트 업계의 경쟁 강도는 약화했다. 다른 나라처럼 추가적인 업계 통합은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출혈 경쟁을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급하지 않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 시멘트 산업에 진입하고자 했던 레미콘 업체들의 관심도 예전보다는 시들하다. 삼표그룹은 삼표시멘트와 시너지 효과를 강화하는 것이 앞선 과제다. 지난해부터 ㈜동양, 현대저축은행을 인수한 유진그룹은 추가 M&A를 추진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방 산업인 건설업의 호황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레미콘 경기는 전방산업인 건설에 비해 6개월 정도 후행 하는 성격을 가진다”며 “당장 내년부터 주택 분양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정부 부동산 규제도 강화하는데 과감히 투자할 만한 곳이 있을지 미지수다”고 말했다.

      PEF 업계에선 1년만에 한라시멘트의 재무구조가 급변한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라시멘트는 작년말 순차입금이 -1553억원에 달하는 등 무차입 기조를 이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라코와 합병, 리파이낸싱 등으로 차입금이 40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PEF가 즐겨 쓰는 레버리지 전략의 일환이라 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1년간 회사를 최대한 쥐어짰기 때문에 PEF가 다시 들어가 얻을 것이 많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한라시멘트는 이 외에도 일부 사업부문 매각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PEF 업계 관계자는 “PEF가 프리미엄을 주고 사갔던 매물이 짧은 시간에 다시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다른 PEF들이 매력을 느끼긴 쉽지 않다”며 “부채는 크게 늘어난 반면 순자산의 경우 광산개발권 등 무형 자산이 많아 가치 산정 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