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KW 오너 '몽니'에 전전긍긍한 LG그룹
입력 2017.09.01 07:00|수정 2017.09.04 18:23
    '가문 기업·은둔 경영' 특성상 진전 보지 못하는 거래
    "구속력 있는 계약조건" 요구하는 LG vs. 회피하는 ZKW
    • 인수·합병(M&A)에 조단위 뭉칫돈을 풀기로 한 LG그룹이 밀고 당기기 '고수'를 만났다. 오스트리아 전장업체 ZKW 인수를 위해 1년 넘게 역량을 총투입하고 있지만, '깜깜이 협상'을 내세우는 매각 측에 시달리며 좀처럼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ZKW는 193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됐다. 세계 2차대전 시기 금속 제련 사업을 통해 사세를 키웠고, 이후 자동차·오토바이 부품사로 성장했다. 창업주의 사망 이후 쇠퇴를 거듭한 끝에 파산했고, 1982년 모머트 가문(Mommert family)이 인수해 본격적으로 자동차용 헤드 램프 등 조명 분야에 역량을 집중했다.

      올해로 76세인 울리히 모머트(Ulirich Mommert)와, 1990년 29세 나이에 전문경영인으로 등장한 휴버트 슈라이트너(Hubert Schuhleitner, 지난해 퇴임)가 공동으로 경영해 회사를 급성장시켰다. 1990년대 매출 규모 3000만유로(한화 약 400억원), 종업원 400명 규모의 회사는 지난해 기준 연간 매출액 7억5000만유로(한화 1조원), 종업원 8500명의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했다. 점유율 기준으론 세계 5~6위권이지만 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볼보 등 폭넓은 글로벌 완성차 공급망을 보유한데다 독자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 사 프리미엄 라인 공급에 집중해 내실을 다졌다.

      지난해 초 매각을 결정한 후 원매자를 찾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매각 사유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자동차 부품의 전장화가 진행되며 IT기술과의 접목이 필수가 된 산업 환경 변화를 주요 요인으로 꼽고 있다. ZKW가 기존의 '장인정신'만으로 경영을 이어가기에 부담스러운 점이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파나소닉, LG 등 차량 전장사업에 발을 들인 글로벌 IT기업 등이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경이다.

    • 문제는 매각 측의 협상 태도다. 비상장사인데다가 오랜 기간 특정 가문이 경영해온 탓에 거래상 비밀 보장이 확고한 '제 1 원칙'이다. 통상적인 입찰 절차는 일찌감치 거부됐고, 글로벌 투자은행(IB) 한 곳을 선임해 거래에 참여한 LG그룹도 1년 넘게 진땀을 빼고 있다. LG 측은 '구속력 있는(binding)' 계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매각 측에선 위약금 등 어떠한 구속력 있는 조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거래에 밀접한 관계자는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정도면 '스크루지 영감이랑 거래하는 기분'이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며 "오전에 구두로 합의한 내용인데 오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말을 바꾸는 것이 부지기수여서 진성매각 의지가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말 일본 파나소닉이 약 1조2000억원에 ZKW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협상은 지속됐다는 후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계약서 작성 이후에도 조건을 바꿔달라고 판을 흔들고 기존 합의는 모르쇠로 잡아떼는 등 파나소닉도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측 태도가 이렇다 보니 매물을 지켜보던 글로벌 유력 인수 후보들은 하나둘씩 협상장에서 떠났다. 현재 LG를 포함해 일본 파나소닉·중국 업체 등 소수 후보들만이 거래를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인수를 위해 LG실트론 지분을 매각했고, LG전자 내 사업부를 일부 조정하는 등 그룹의 총력을 다한 상황이라 쉽사리 발을 빼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전장 사업 확장을 위해선 M&A를 통한 글로벌 완성차업체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LG가 시장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글로벌 티어1(Tier-1) 부품사 인수에 욕심을 낼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의 M&A 결단 과정이 다른 그룹들에 비해 워낙 복잡하고, 전장사업이 구본준 부회장이 의욕을 가지고 키우는 사업"이라며 "LG입장에서도 매각측에 강한 의사를 표출했기 때문에 거래를 깨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딜(Deal)이라면 협상장에서 수시로 얼굴을 맞대며 면책 조항 등 보호장치를 요구하겠지만, 글로벌 거래에선 요구하기 쉽지 않은 사례가 많다"며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 시도 사례처럼 구속력 없는 계약을 하게 되면 유리한 위치에 서더라도 기간이 길어지면 매각 측에서 다른 후보자들에 더 유리한 가격을 제안받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