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데르와 도쿄마린이 들려주는 '글로벌 진출' 비법
입력 2017.09.04 07:00|수정 2017.09.05 09:06
    [Invest Column]
    • # 자산 규모 세계 5위권인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은 비영어권 은행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은행으로 꼽힌다. 30년전만 해도 스페인 지방의 중소 은행에 불과했던 산탄데르는 이젠 해외 수익 비중이 90%가 넘는 글로벌 은행이 됐다.

      산탄데르는 글로벌 진출 초기에는 잘 아는 업종(개인소매금융)·잘 아는 지역(동일언어권) 우선 투자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꾸준히 투자를 늘려나갔다. 그렇게 10년 이상 내공을 쌓은 후 2004년 영국 애비인터내셔널, 2006년 미국 소버린은행을 인수하며 지역 다각화에도 성공했다.

      산탄데르의 글로벌화를 이끈 건 1986년 취임한 에밀리오 보틴 전 회장이다. 그는 평소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 산탄데르의 글로벌 진출 관련 요약 자료를 항상 가지고 다닐 정도로 성과를 자랑스러워 했다. 성공적인 글로벌 진출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그는 "20년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답했다.

      # 일본 1위 손해보험사 도쿄마린(동경해상)은 지난 2015년 미국 텍사스의 HCC인슈어런스홀딩스를 9200억엔(약 9조원)에 인수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을 놀라게 했다. 도쿄마린은 HCC 외에도 지난 10년간 영국과 미국에서 총 17조원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도쿄마린의 첫 글로벌 진출 결과는 '실패'였다. 1980년 미국 휴스턴의 작은 보험사를 인수했다. 인수 후 통합(PMI)이 여의치않아 1998년 재매각했다. 도쿄마린은 주눅들지 않았다. 2000년 영국령 버뮤다에 재보험사를 세웠다. 그리고 우수한 인재를 이곳에 보내 경력을 쌓게 했다. 이곳에서 경험이 쌓인 인재들을 모아 2007년 해외사업기획부를 꾸렸다. 이들은 2008년 영국 로이즈의 멤버인 킬른을 시작으로 HCC까지 대규모 해외 M&A를 수차례 성공시켰다.

      나가노 츠요시 도쿄마린 대표이사 회장은 1975년 입사해 미국 LA 주재원을 거치는 등 해외 사업에 정통한 내부 출신 경영진이다. 전무·부사장 시절 해외 사업을 총괄했다. 도쿄마린의 글로벌 진출 성공에 대해 금융시장에서는 '30년 투자의 결실'이라고 평가한다. 나가노 대표는 "결국 재능있는 인재에게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금융회사의 글로벌 진출 성공기는 현재 국내 금융회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산탄데르는 까하(금고) 난립으로 인한 소매금융시장 포화, 도쿄마린은 자동차 판매 저하와 주택 감소로 인한 성장 정체와 마주한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국내 시장 포화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 눈을 돌린 국내 금융사들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긴 호흡으로 시간과 자본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산탄데르는 같은 언어권인 남미에 우선 진출해 충분히 역량을 쌓은 후 영국·미국 등 선진 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도쿄마린은 영국 버뮤다 현지법인에 7년 이상 핵심 인재들을 파견했다. HCC 인수 실무책임자였던 후지이 쿠니히코 현 부사장 등이 버뮤다 현지 법인 출신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글로벌 진출 역사는 길게는 15년이 넘는다. 다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해외진출이라기보단 국내 제조업체들의 해외 진출에 동반자로 따라가는 구조였다. 신한은행 베트남법인이 국내 금융회사 현지법인 중 최고에 가까운 수익성을 보이고 있는 건 삼성전자 등 현지에 진출한 국내 제조업체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진출은 2010년대들어 시작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3~4년 사이 인도·베트남·필리핀·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인수합병과 현지 법인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현지 금융시장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해외 진출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이렇게 보면 국내 금융회사들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인 셈이다.

      금융업의 글로벌 진출은 제조업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단기적인 집중투자는 효과가 없다. 삼성증권 홍콩법인이 대표적인 '반면교사'다. 2009년 1억달러를 투자하며 대대적으로 규모를 키웠지만, 성과가 나지 않자 2011년 사업과 인력을 대폭 축소했다.

      당시 금융시장에서는 '전형적인 삼성전자 제조업 마인드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증권을 비롯해 당시 상당수 증권·운용사가 해외 사업을 축소하며 국내 금융업의 해외 진출 성과는 수 년 퇴보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적인 호흡을 가지고 국내 금융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꾸준히 투자한다면 성과가 날 수 있다"며 "긴 안목을 가진 경영진의 지혜와 경영진을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주주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