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지연 성공(?)한 도시바, 결국 공적자금 지원 노리나
입력 2017.09.04 08:49|수정 2017.09.05 09:06
    "도시바-WD 협상 결렬 이유는 중국" 의견 제기
    애플, 부품 공급망 안정화 목적에 참전
    협상 지지부진에 독자 생존 가능성 배제 못해
    • '두 달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만 두 차례 번복'

      도시바의 반도체 자회사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신(新)미·일 연합’과 ‘한·미·일 연합’, ‘훙하이 연합’ 등 3개 진영과 협상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유력 인수후보였던 웨스턴디지털(WD) 뒤에 드리운 중국, 애플의 막판 참전 결정 등 인수전 판도를 뒤흔든 변수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협상 속에 "일본의 공적 자금 투입을 위한 들러리"라는 인수 후보들의 불만도 감지된다.

      도시바측이 매각 시한으로 제시한 8월31일, 일본 언론과 외신에선 도시바와 단독 협상을 벌여온 미국 WD와 KKR 연합의 도시바 인수를 기정 사실화했다. 하지만 도시바 측이 이사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매각 상황을 검토했으나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며 "SK하이닉스-베인캐피탈 연합, WD, 폭스콘 등 3개 진영과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혀 다시 원점에 섰다.

      도시바는 WD와의 결렬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협상 막바지까지 WD측은 경영권 지분과 기존 경영진 해임을 요구하는 등 서로 평행선을 보였지만, 극적으로 일부 조건을 양보하면서 협상이 진전됐다. 하지만 최종 협상이 틀어지며 WD의 도시바 인수 이후 설비 투자·자금 조달 등 향후 경영 로드맵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WD의 자금 조달 및 설비 활용 등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이 관측되며 협상이 무산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드디스크 생산 업체였던 WD는 지난 2015년 낸드플래시 업체 샌디스크(Sandisk) 인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중국 칭화유니에 지분 15%를 매각해 최대주주로 끌어들인 후, 중국 자금을 바탕으로 샌디스크 인수를 계획했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진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로 칭화유니로의 지분 매각이 무산됐다. 결국 독자적인 자금 조달을 통해 샌디스크 인수를 극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예상치 못한 재무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WD의 도시바 인수가 확정될 경우 일본 정책투자은행(DBJ), 산업혁신기구(INCJ) 등과 컨소시엄을 조성할 가능성이 유력한만큼 자체 인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추가 설비 투자 규모도 만만치 않다. 도시바는 위기 이전 보유한 낸드 설비를 3D낸드로 전환하는데 3년간 약 1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쟁 반도체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의 호황을 통해 확보한 수익으로 낸드에 꾸준히 투자를 집행할 수 있지만 WD와 도시바는 D램을 생산하지 않는다. 투자를 뒷받침해줄 든든한 '캐시카우'가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WD측이 도시바 인수 이후 설비 투자는 중국 칭화유니에 전담시키는 '투트랙'을 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미국 마이크론은 대만 파운드리 법인 이노테라를 인수해 생산을 전담시켜 '미국-대만' 동맹을 꾸리기도 했다. 도시바와 일본 정부가 가장 피하고 싶은 중국의 기술 진입을 돕는 꼴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칭화유니가 난징에 300억달러(약 35조원)을 들여 반도체 라인 설립 계획을 밝혔고, WD가 파운드리를 맡기는 형식으로 서로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WD입장에서 도시바를 사더라도 자체 자금 투입으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자금력을 추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설비투자(Capex)를 전담해줄 파트너가 필요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 WD 진영에 밀렸던 SK하이닉스-베인캐피탈 연합군은 막바지에 애플을 끌어들이며 역전을 노리는 상황이다. 애플은 최근 3000억엔(3조1500억원)을 조달하기로 하고 한미일 연합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애플과 도시바는 상호 일정 물량을 보장받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애플이 차기 아이폰8에 사용되는 낸드플래시 절반 이상을 도시바에서 공급받는 점이 대표적 예다. 이미 낸드분야 기술력, 점유율 측면에서 압도적인 삼성전자는 애플측의 물량 보장 요구를 거절했지만, 도시바엔 애플이 안정적인 장기 수익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등의 확산으로 데이터 처리를 위한 낸드플래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며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르자 상황은 바뀌었다. WD 측에선 도시바 인수 후 생산되는 낸드를 수익성이 훨씬 좋은 클라우드 서버 분야로 공급하고 싶어한다. 공급망 관리를 최우선 전략으로 삼는 애플의 입장이 인수전에 뛰어든 배경이다.

      다만 매각 과정에서 일본내 여론과 정부의 외교·안보적 고려가 개입되며 진성 매각에 대한 의문도 다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현 진행 상황을 고려할 때 매각 장기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오히려 도시바가 이런저런 이유로 매각을 지연시키며 일본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포석으로 여론전을 이끌고 있다는 의구심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매각 과정이 지연되면서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인수 후보들을 들러리로 세운 후 실제로는 독자 생존을 위한 명분만 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