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신호 오판한 'KB·현대차 노조'의 어깃장
입력 2017.09.11 07:00|수정 2017.09.12 09:59
    [Invest Column]
    •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철폐,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거침없는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조합들도 생존권 보장, 조직의 투명화, 근로조건 개선 등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며 목소릴 높여가는 양상이다.

      ‘친노동’을 표방하는 정부와 대선 당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노동계는 일견 한 배를 탄 처지로 보인다. 노동계로선 지난 정권들에서 홀대 받은 설움을 풀어낼 적기라고 판단할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노동자의 권리 향상의 욕구는 자연스럽다.

      이번 정부를 관통할 핵심 이념은 일자리고, 여러 정책들의 방향성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 인상에서 엿볼 수 있다. 최저임금을 정부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곳들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들이다. 이들이 근로자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대기업과 갑(甲)이라 불리는 곳들의 수탈적 거래 형태가 단절돼야 한다.

      정부가 심혈을 쏟고 있는 유통산업 개혁이 단적인 예다. 대기업의 착취를 막고 이익이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유통개혁은 후퇴하지 않고 예측 가능하며 지속 가능하도록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동산 정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몇 차례 실효성 논란에도 꾸준히 새로운 안을 내놓는다. 이는 ‘실수요자를 착취하는 투기 세력을 잡을 것이며 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다.

      이번 정부가 적어도 ‘무언가 빼앗겼다’는 전제를 깔고 더 많은 기득권을 쟁취하려는 일부 노조를 위한 정부로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귀족노조'라며 비판받는 큰 기업의 노조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부 노조들은 아직도 정부는 무조건 근로자 편일 것이란 착각 속에서 정부의 정책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고 자기 잇속만 채우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빠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이들은 귀를 닫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대선때 상급단체와 갈등을 감수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KB금융지주 노조는 최근 회장 승계 절차가 시작되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KB금융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선임 규정도 이미 지난해부터 공지해왔던 터라 노조의 주장은 명분이 약해 보인다. 노조가 더 투명한 승계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시기를 골랐을 수 있으나, 다른 목적을 위한 포석이란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

      KB금융 노조는 과거에도 새로운 수장이 나타날 때마다 반대한 후 혜택을 얻어간 전례가 많다. KB금융 사장을 지낸 임영록 전 회장조차 낙하산 인사라며 출근을 막았고, 윤종규 회장이 내정된 후에는 국민은행 노조가 특별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은 윤종규 회장이 초과 이익 공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조는 경영 참여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 출신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한다는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도 참석했다. 이를 두고 '야합'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그룹이 위기를 극복하고 본 궤도에 올라 리딩뱅크를 노리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적절한 요구인지도 논란거리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달 부분 파업을 단행하며 6년 연속 파업을 이어갔다. 중국 사업 부진과 실적 하락의 위기도 노조의 결정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회사의 실적이 좋았다면 노조의 목소리가 더 컸을지도 모를 일이다. 회사가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조와 야합하며 지금의 어려움을 자초한 면이 크다는 지적도 있지만, 기득권 강화에만 목매는 귀족노조의 행태도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현대차 노조의 독보적 지위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한참 벗어나 있다.

      이들 노조들의 아군이어야 할 곳에서도 동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이 아닌 기득권을 지키고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 형태로 뭉친 노동자 집단’이라는 비판이다.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는 조직 노동자들이 회사와 야합해 조직을 갖지 못한 노동자와 하청업체를 착취하는 기형적 형태로 발전했다”며 “지금까지 보호받지 못했던 근로자의 권리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인식전환이 없다면 올바른 노동운동을 하는 집단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금융회사 노조위원장을 지낸 한 인사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노조들이 설 땅도 넓어졌지만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지 KB금융 등 대형사 노조들의 공은 아니다”며 “노조들이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할 헤게머니를 쥐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며 친노동 정권일수록 더욱 겸손하고 시대 정신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