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쇼크' 공모 ELB 시장 '공동화' 뚜렷
입력 2017.09.28 07:00|수정 2017.10.10 09:04
    중위험 고수익 이미지 퇴색...'막장 조달' 선입견 강해져
    두산건설·중공업 주가 급락에 신주인수권 차익 불가능
    • 공모 주식연계증권(ELB) 발행시장이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다. 이전같은 중위험 고수익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퇴색되고, 위험한 기업이 선택하는 카드라는 선입견이 강해지고 있다.

      올해 대거 ELB를 발행한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끝없이 추락하며 이 같은 부정적인 인식은 당분간 이어질거란 분석이다.

      인베스트조선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 말까지 주식자본시장에서 발행된 공모 ELB는 총 1조4930억원 규모다. 지난해 같은 기간 7270억원에 비해 2배 가까이 시장 규모가 커졌다. 대부분 신주인수권부사채(BW)였고 전환사채(CB)는 1건이 발행됐다.

      다만 이는 외부 투자유치와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두산그룹이 ELB 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조달하며 생긴 착시효과에 가깝다.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각 5000억원, 두산건설 1500억원 등 올해 두산그룹은 분리형 공모 BW로만 1조1500억원을 조달했다.

      두산그룹 발행분을 제외하면, 3분기 말 기준 공모 ELB 발행 규모는 343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5770억원(두산건설 BW 제외)보다 오히려 발행 규모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ELB 발행 이후 급락하며 투자자들이 우려한 '부정적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발행된 두산건설 BW의 신주인수권행사가액은 3185원이다. 발행 당시엔 3590원이었지만 주가가 급락하며 재조정(리픽싱;re-fixing)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 현재 주가는 2900원(25일 종가 기준)으로 이에 미치지 못한다. 신주인수권 행사를 통한 차익실현이 불가능해진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채권의 가격도 여전히 8700~8900원(1만원권 기준) 안팎에 머물고 있다. 대규모 실권 물량을 떠안은 발행 주관사들이 지속적으로 시장에 매물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4월 발행된 두산중공업 BW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BW 발행 결정 전 2만7000원 안팎을 오가던 주가는 현재 1만6250원(25일 종가 기준)으로 뚝 떨어졌다.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은 1만9100원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3000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게다가 두산중공업 BW의 리픽싱 한도는 80%다. 최저 1만8760원까지만 행사가액을 낮출 수 있다. 주가가 이미 최저 리픽싱 가격을 밑돌고 있는 셈이다. 투자자들의 차익실현은 더욱 요원해진 상황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인 지난 7월 발행된 두산인프라코어 BW는 상황이 낫다. 현재 주가가 8090원으로 신주인수권 행사가액(8030원)을 웃돌고 있다.

      BW는 신주인수권 옵션 덕분에 일반 무보증 회사채보다 훨씬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두산건설은 같은 신용등급 일반 회사채 만기금리 대비 4%포인트 이상, 두산중공업은 2%포인트 이상 낮은 금리로 BW를 발행했다.

      주가 하락으로 신주인수권 옵션이 무력화되며 투자자들은 당초 예상했던 수익을 거두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기회비용까지 따지면 사실상 손실에 가깝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한 기관 관계자는 "두산중공업 일반공모엔 나름 기대감을 품은 4조원의 청약 수요가 몰렸는데 수익은 신통치 않은 상황"이라며 "신주인수권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표면금리는 은행 금리보다도 못한 연1%에 불과하고 조기상환도 3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두산그룹 BW가 공모 ELB 시장 수요를 대부분 쓸어간 상황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지 못하며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시작된 ELB 발행 열풍은 기아자동차와 코오롱 BW가 고수익을 낸 데 힘입은 바가 컸다. 지금은 반대로 현대상선에 이어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투자 실패 사례가 쌓이며 ELB 상품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 운용사 메자닌 투자 담당자는 "매년 1000억원대 ELB를 발행해 운영자금과 조기상환자금을 충당해오던 두산건설이 내년에도 또 발행을 나설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ELB에 '재무 사정이 매우 어려운 기업들이 마지못해 선택하는 조달 수단'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