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는 없고 세금은 부담”…PEF 중견기업 승계 거래 '봇물'
입력 2017.10.27 07:00|수정 2017.10.31 09:53
    창업주가 믿을 후계자가 없거나 2세가 승계 원치 않아
    규제 및 사회 분위기 부담…PEF 유동성으로 회수 기대
    단계별 회수 및 VC 설립 등 다양한 거래 형태 나타날 듯
    • 사모펀드(PEF)들이 우량 중견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창업주는 기업을 후대에 맡기자니 경영을 잘 할 것이란 확신이 서지 않고, 자식들도 굳이 선대가 걸어온 어려운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 까닭이다.

      상속에 따른 막대한 세금 부담을 지느니, PEF의 풍부한 유동성에 기대어 회수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SC프라이빗에쿼티는 최근 ‘지도표 성경김’으로 알려진 성경식품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1981년부터 김 판매를 시작했을 만큼 업력이 있지만 수년 전부터는 잠재 매물로 꼽혀 왔다. 창업주가 완치가 어려운 병을 앓으면서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고, 마땅한 승계처도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수 기회를 찾던 차에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이 나타나자 협상이 본격화 했다.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인수했다. 김준일 회장은 여느 기업의 창업주들처럼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고, 매각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최근 사회적으로 기업 상속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고, 2세 승계가 회사에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자식에도 기업보다 현금을 물려주는 것이 낫다는 판단 아래 경영권 매각으로 빠르게 선회했다는 후문이다.

      바이오 의약품 기업 휴젤(베인캐피탈)이나 화장품 회사 에이블씨엔씨(IMM PE) 등도 창업주 지분이 PEF로 옮겨간 사례다. 이 같은 PEF의 우량 기업 경영권 승계 거래는 수년 전부터 싹트는 분위기였는데, 앞으로 더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견 기업의 창업주나 오너들이 승계를 고민할 시기에 PEF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믿고 맡길 후계자가 없어서다. 회사를 초기부터 키워온 애착이 강해 경영권 매각 후 회사가 망가질까 우려한다. 업의 어려움을 알기에 자식은 ‘기름밥’을 먹길 원치 않거나, 자식이 승계를 바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안경 렌즈 업체 대명광학은 2015년 말 미국 사모펀드 윈드포인트파트너스에 팔렸다. 창업주 이경석 대표도 가업 승계를 고려했었지만 유학을 다녀온 2세는 공장이 있는 대전광역시에서 일하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회사는 PEF에 팔렸고, 2세는 서울에서 편의점 점주로서 삶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림포장 창업주 정동섭 전 회장은 회사 매각 보다 계열사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를 염두에 뒀다.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유지하면서 상속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가족회의에선 지주사 전환으로 뜻이 모이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결국 2015년 계열사를 통째로 IMM PE에 매각했다. 그 편이 개별 회사 매각보다 직원 고용에 유리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창업주가 회의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에 공장이 있는 한 삼성전자 1차 벤더기업의 창업주는 2세가 없어 회사 경영과 매각 사이에서 좌고우면해왔다. 다른 한 창업주는 최근 “70 평생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미국 여행 한번 못했다”며 모두 내려 놓고 쉬고 싶다는 뜻을 모 PEF 운용사에 내비치기도 했다.

      사회적 분위기나 규제도 가업을 승계하는 데 우호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정농단 사태 후 경영권 승계에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이미지가 많이 쌓였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상증세 신고세액 공제율은 단계적으로 인하되는 반면, 가업상속공제 적용 기준은 강화된다. 대주주의 주식 양도세엔 누진제가 도입되기 때문에 해를 넘기기 전에 거래를 끝내자고 재촉하는 기업들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PEF가 관심을 가질 중소·중견 기업은 비상장기업이 많다. 비상장기업 주식은 자산가치와 손익가치를 병행 판단해 그 가치를 정하는데, 올해 초부터 자산가치의 80%를 평가 하한으로 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평가 방법에 따라 130%까지 그 가치가 할증될 수 있는 규정도 생겼다. 예전보다 상속에 따른 세금 부담이 커진 셈이다.

      PEF와 M&A 시장 흐름 변화에 기인한 현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기업이 관심을 갖는 대형 M&A는 PEF에 승산이 많지 않고, 조력자로 참여하기도 어렵다. PEF들은 대기업의 발이 닿지 않았고 성장성 있는 숨은 강자를 찾아내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기업의 오너들은 유동성이 풍부한 PEF간 경쟁 심화가 더 큰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 기업의 성공 사례가 나오면 동종업계 오너들의 눈높이도 높아진다.

      M&A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락앤락처럼 경영권 승계를 고민해야 할 우량한 중소·중견 기업을 인수하는 PEF가 늘어날 것”이라며 “많은 기업의 오너들이 PEF 업계의 풍부한 유동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오너들이 PEF를 활용해 승계 혹은 회수에 나서는 형태도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JKL파트너스가 지난해 인수한 강구조물 업체 거흥산업은 승계 대신 2단계의 회수 구조를 짰다. 이규석 전 대표는 지분 100% 중 70%를 매각해 회수하는 한편, 등기이사로 남아 회사의 영업력 유지에 기여했다. 향후 JKL파트너스가 회사를 매각할 때 함께 추가 이익을 노릴 수도 있고, 그 때 가서 다시 승계를 고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놨다. 유니레버에 인수된 카버코리아의 이상록 회장도 지난해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1차 회수를 단행했다.

      국내 대형 PEF 운용사 관계자는 “일부 기업 오너들은 경영권을 매각하면서 매각 대금 일부로 벤처캐피탈(VC)을 세워줄 테니 그 VC의 운용을 맡아줄 수 없느냐고 문의하기도 한다”며 “경영권 매각으로 목돈을 쥐는 한편, 2세는 VC 경영진에 포함시켜 건실한 투자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