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은 곧 그룹"…삼성물산의 회사채 마케팅 통했다
입력 2017.10.30 07:00|수정 2017.10.31 09:52
    2000억 회사채 발행에 6400억원 기관 수요
    오너 불확실성 해소·금리 상승에 선제 대응
    주관사단, 실적 보단 '지분가치'에 방점
    회사채 큰손 삼성물산 내년 차환에도 '주목'
    • 삼성물산이 1년여 만에 회사채 시장에 등장했다. 여러 악재들이 눈 앞에 있었지만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했다. 부진한 개별사업 보다 사실상 '지주회사'라는 삼성그룹 내 위상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삼성물산은 내달 초 3년 만기 1500억원, 5년 만기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회사는 지난 26일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수요예측을 실시했고, 그 결과 3년물에 4100억원, 5년 물엔 23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국민연금이 총 1000억원의 투자의사를 밝혔고 일본계 기관의 자금도 대거 들어왔다.

      회사가 최초 제기한 금리 밴드는 민간채권평가사가 산정한 삼성물산 회사채 개별민평 수익률 산술평균에 10bp(0.01%포인트)를 더하거나 뺀 수준이다. 삼성물산의 개별민평금리는 3년물의 경우 2.532%, 5년물은 2.881%이다. 현재까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수요예측 흥행에 힘 입어 평균금리에서 5bp 내외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물산의 회사채 발행은 약 1년여 만이다. 올해 1조7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예정돼 있던 탓에 국내 금융권에선 대규모 차환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과의 합병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제기됐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사가 진행되면서 삼성물산은 회사채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올해 들어 삼성물산은 내달 만기가 돌아오는 2000억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액을 현금상환 했다. 호텔신라를 제외한 삼성그룹의 모든 계열사도 순상환 기조를 나타내며 총 2조원에 달하는 회사채 만기를 현금 상환으로 대응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삼성물산을 비롯한 계열사 대부분이 올해까진 순상환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 재판의 1심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굳이 현금으로 상환해 부담을 안고 갈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차환발행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발행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국내 증권사 한 관계자는 "대내외 이슈들로 발행에 나서지 못했던 예전과 달리 현재는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된 상황"이라며 "금리상승이 예견되는 상황이지만 AA급 기업에 대한 기관수요는 충분할 것이란 판단에 발행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을 바라보는 기관투자가들의 시각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건설회사로서 삼성물산의 사업과 장래성을 판단하기 보단 보유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가치, 이를 통한 그룹 내 위상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의 올 3분기 영업이익(220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18%가량 증가했지만 주력인 건설부문의 영업이익(1050억원)은 전년보다 약 31% 감소했다. 건설부문 수주잔고는 꾸준히 줄어 지난 2015년과 비교해 3분의 2수준에 그치고 있다. 올 3분기 성수기를 맞은 리조트 부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문의 영업이익률이 전 분기보다 떨어졌다.

      반대로 보유지분의 가치는 상승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배당을 지속적으로 늘려감에 따라 삼성물산이 받는 수혜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 3분기부터 흑자를 기록하며 삼성물산의 실적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고 있다.

      주관사단 및 인수단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가치'와 그룹 내 '위상'을 적극적으로 어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거래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주력인 건설부문의 현재 실적과 사업성보다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가치에 대해 기관에 강하게 어필하며 사실상 삼성물산이 곧 삼성그룹이란 이미지를 부각했다"며 "국민연금과 해외 기관투자가들도 그룹 내 위상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 이번 흥행을 계기로 삼성물산과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내년에 적극적으로 회사채 시장을 찾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삼성물산의 내년 만기 도래 회사채 규모는 9700억원이다.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삼성바이로직스는 올해 초부터 회사채 발행을 검토해 왔으나 최종 결정은 유보한 상태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발행에서 기관의 수요와 투자심리를 확인한 삼성물산이 내년부터는 다시 회사채 발행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있다"며 "본격적으로 수익을 거두기 시작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도 회사채 발행 협상을 충분히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