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선 현대라이프...'고아' 되나
입력 2017.11.08 07:00|수정 2017.11.09 09:25
    경영 전략 실패...5년간 4200억 증자 '무위'로
    5000억 추가 지원하면 '1조원'...'그 정도 가치 있나'
    곤혹스런 현대車·푸본생명...현대라이프 운명 '주목'
    • 5년. 현대라이프생명보험에 투입한 4200억원이 '헛돈'으로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참신해 보였던 마케팅은 시장에서 외면당했고, 뒤늦게 타사를 쫒아가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략적 경영 실패'라는 말 외에 다른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생사기로에 선 현대라이프는 지금껏 투자받은 규모보다 더 큰 5000억원의 지원을 주주에게 요청했다. 현대라이프의 부모격인 현대차그룹과 대만 푸본생명의 표정은 심상치 않다. '양육권'을 떠넘기려는 분쟁마저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현대라이프는 2년 전에도 한번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었다. '현대카드 제로'의 흥행에서 얻어낸 '단순·명쾌'라는 키워드는 보험시장에서 먹히지 않았다. 30년간 돈을 내고 50년 후 돌려받을 상품을 그 누구도 마트의 가설 가판대에서 사려고 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2012년 인수 후 두 차례에 걸쳐 지원한 2000억원의 종잣돈은 야금야금 사라져 2015년 중반엔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2014년 초 510억여원이었던 결손금 규모는 2015년말 1870억여원까지 불어나있었다. 설계사를 대거 충원하며 공격 영업에 나섰지만, 그만큼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자산운용 전략도 시장의 흐름과 어긋났다. 현대라이프는 2014년을 전후해 보유 중이던 채권을 대거 매각했다. 금리가 떨어질대로 떨어진만큼, 수익성 확보를 위해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해뒀던 채권을 현금화한 것이다. 이는 오판이었다. 시장금리는 3년 뒤인 올해 상반기까지도 줄곧 하락세였다. 채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던 경쟁사들은 대규모 평가 이익을 누렸다.

      그 사이 150% 안팎을 유지하던 지급여력(RBC)비율은 2015년 3분기 말 109%까지 떨어졌다. 금융감독원의 제재 수준(100% 이하)에 가까웠다. 현대차그룹이 현대라이프에 투자를 계속할까?는 물음표가 처음 시장에 제기된 때가 이즈음이다.

      지분 인수를 포함해 이미 현대라이프에 4400억여원을 투자한 현대차그룹은 추가 지원 대신 파트너를 물색에 나섰다. 당시 임석정 대표가 이끌던 JP모건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임 대표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겸 현대라이프 이사회 의장의 오랜 친구로, GE의 현대캐피탈 지분 매각 등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거래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만 푸본생명이 현대라이프의 파트너로 떠올랐다. 시너지를 낼수 있을만한 해외 파트너를 찾던 현대차그룹과, 자국 내 저금리와 시장 포화로 해외 투자처를 찾던 푸본생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정태영 부회장과 다니엘 차이 푸본그룹 회장이 담판을 지었다.

      푸본생명은 당시 중국 투자에 집중하고 있던 현대차그룹의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 본토 진출에 도움을 받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푸본생명은 2014년 중국 상하이의 시노은행 경영권 지분을 취득하는 등 본토 진출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푸본생명은 현대라이프에 2200억원을 투자해 지분 48.6%를 확보했다. 앞서 2012년 현대차그룹이 현대라이프 지분 98.5%를 2400억여원에 산 점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값을 쳐준 셈이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이후 현대라이프의 재무 지표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푸본생명 입장에선 '현대차그룹과의 관계'에 상당액을 베팅한 셈이다.

      푸본생명은 앞서 2008년 적자상태이던 ING생명 대만사업부를 인수해 흑자전환시킨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푸본생명은 현대라이프에 사외이사를 파견하고 리스크관리와 자산운용에도 협력했다. 현대라이프는 푸본생명을 새 주주로 맞이한 후 상품 리뉴얼에 나서는 등 분위기 쇄신을 꾀했다.

      '푸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점유율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RBC비율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 회계기준인 IFRS17 적용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현대라이프는 대신생명·녹십자생명보험 시절 판매한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6만건 이상 떠안고 있다. 중소형 생보사 중에선 부담이 큰 편에 속한다.

      '5000억원 증자'는 누적 적자와 회계기준 변경 등을 감안해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치라는 게 보험업계 안팎의 평가다. 여기서 현대차그룹과 푸본생명은 다시 물음 앞에 서게 된다. 현대라이프가 기존 투자분을 포함해 '1조원'을 투자할만한 회사냐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라이프의 요청에 일단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라이프 지분은 현대모비스가 30%, 현대커머셜이 20%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커머셜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다. 지원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푸본생명만 현대라이프 증자에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푸본생명 입장에서도 추가 투자는 신중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지난 2년간 푸본생명과 현대차그룹의 시너지는 제로에 가까웠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사업은 외풍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했다. 개인영업을 사실상 포기하고 법인영업에 집중하기로 한 현대라이프의 새 영업전략은 '모험'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올 상반기 말 기준 현대라이프 법인 매출 비중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방향으로 현대라이프의 운명이 전개될 진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현대차그룹이 다시 통 큰 투자를 선택할 수도, 아예 발을 빼려 할 수도 있다. 푸본생명의 참여 여부는 현대차그룹과의 관계와 한국 진출 필요성 등의 변수에 따라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두 주주가 고심하는 사이 현대라이프의 입지는 더 위축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보험사 회계 연착륙을 위한 신지급여력제도(K-ICS)를 도입하고, 책임준비금 적정 평가(LAT) 방식을 단계적으로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회계규정 변경에 따라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며 자본여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보험사는 점점 도태되는 구조로 이미 시장은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