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탓 어려워진 상장사 증자...'한국형 헤지펀드'가 원흉?
입력 2017.12.22 07:00|수정 2017.12.26 09:37
    삼성중공업 현대상선...공매도 세력에 '쩔쩔'
    헤지펀드 시장 커지며 공매도 바람 거세져
    증자 못해 구조조정 가는 기업 나올수도
    • "공매도 세력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요샌 특히 그러네요."

      이달 초 마무리된 6000억원 규모 현대상선 유상증자를 담당했던 한 증권사 담당자의 말이다. 현대상선은 증자 발표 이후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되어 일일 거래량의 절반수준까지 공매도 비중이 증가하기도 했다.

      이는 신주 발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증자 전 8000원 수준이던 주가는 급락하여 액면가(50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현대상선은 신주 발행가를 5000원에 결정하면서 조달 자금을 1000억원 줄여야만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번 공매도 세력이 붙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백약이 무효하다"고 한탄했다.

      이달 대규모 증자 계획을 밝힌 삼성중공업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끌어내리며 1만2000원 수준이던 주가는 7200원 수준으로 내려 앉았다. 증권가에선 공매도 세력의 공격이 거세지면 최악의 경우 증자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자 발표 이후 공매도 세력의 공격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수년새 헤지펀드 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헤지펀드 운용사 규제 완화 2주년을 맞이한 현재, 이른바 '한국형 헤지펀드'의 운용자산은 12조원에 달한다. 2015년 말 3조원에서 4배 이상 커졌다. 수탁액 5000억원이 넘는 헤지펀드만 5개사에 이른다.

      헤지펀드 시장 자체는 커졌으나 전략은 여전히 롱-숏 중심 투자가 주를 이룬다. 증자의 경우 시장에 대규모 물량이 풀리면서 주가하락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헤지펀드를 비롯한 공매도 세력의 '숏'(팔자) 거래의 먹잇감이 된다는 분석이다.

      최근 좀 더 강해진 경향은, 공매도 세력이 일단 한번 붙으면 계속해서 주가를 끌어내린다는 점이다. 이전과는 달리 '끝까지 가는'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주가가 액면가 근처까지 떨어지면 '액면가 미만 증자는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하다'는 규정 때문에 시가 대비 할인율을 적용할 폭이 크게 줄어든다. 특히 현대상선, 삼성중공업처럼 부진한 재무구조와 산업 환경에 놓인 기업일수록 공매도 강도는 더 거세다는 평가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구조조정 이슈가 있는 기업의 경우 이렇다 할 주가 부양 방법이 없는데다 주가마저 액면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어서 공매도 세력이 붙으면 증자 자체가 무산될 여지가 크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매도 세력이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시킨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의 최후 수단이 증자인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구조조정 이슈가 있는 기업의 경우 공매도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이 관계자는 "구조조정 있는 이슈가 있는 기업에 대주주가 증자에 나서는 경우에 한해 공매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업계 일각에서 부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