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M&A 시장, KKR·베인 등 글로벌 사모펀드의 약진
입력 2017.12.26 07:00|수정 2017.12.24 20:57
    풍부한 유동성 바탕으로 국내시장 공략
    대내외 이슈로 대기업 움직임은 제한돼
    • 2017년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은 대형 사모펀드(PEF)의 활약으로 점철됐다. 넉넉한 자금을 바탕으로 국내시장 공략에 나선 글로벌 PEF들이 대형 M&A에서 인수자로 이름을 올렸고 흥행에 있어 빠져선 안될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많게는 수 조원대에 달하는 초대형 거래가 내년에도 속속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들의 활약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베스트조선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총 16건의 5000억원 이상 M&A 중 PEF가 인수자로 이름을 올린 거래는 12건이었다. 이중 글로벌 PEF가 참여한 거래는 7건, 20조원 규모의 도시바 메모리사업부를 제외하고도 거래금액이 8조원에 달한다.

      일찌감치 올해 최대 규모 M&A 거래로 예상됐던 일본 도시바(Toshiba) 메모리사업부는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이 차지했다. 베인캐피탈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한국과 미국·일본 기업과 손 잡고 인수전에 참여했고 주도적으로 딜을 이끌며 최종 인수에 성공했다.

      베인캐피탈은 3조원대 카버코리아 경영권 매각을 성사시키며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지난해 골드만삭스와 함께 카버코리아 지분 60%를 약 4300억원에 인수한 베인캐피탈은 1년 만에 리파이낸싱을 통해 투자금 일부를 회수했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유니레버(Unilever)를 상대로 경영권 매각을 성사시켰다. 추정되는 내부수익률(IRR)은 약 400%다.

      카버코리아의 매각은  통해 중국 발 사드(THADD) 여파로 잔뜩 움츠렸던 한국 화장품 제조 기업들이 재조명 받는 기회가 됐다.  올해 인수한 1조원대 휴젤의 투자금 회수에도 카버코리아에 적용된 '중국·다이궁(代工;보따리상)'으로 요약되는 성공 방정식이 통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베인캐피탈에 비견되는 글로벌 PEF는 단연 미국계 운용사 KKR이다. 국내에선 'OB맥주'라는 성공적인 회수(엑시트) 기록을 보유한 KKR 올 초에는  LS오토모티브의 자동차 부품사업부를 1조500억원에 인수했다. 당초 KKR은 경영권 인수를 계획했으나 이란에 진출한 LS오토모티브와 KKR간의 '적성국'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영권 인수 대신 지분투자로 선회했다. 베인캐피탈과 아시아지역에서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 내 영향력 확보와 티몬을 비롯한 기존 포트폴리오의 투자금 회수가 과제로 남아있다는 평가다.

      그 동안 국내 시장에서의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던 텍사스퍼시픽그룹(TPG)도 본격적으로 한국시장 공략에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해 이상훈 전 모건스탠리PE 대표를 한국 대표로 영입한 TPG는 올해 카카오모빌리티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5000억원을 투자했고 고급 바닥재 업체 '녹수'를 360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TPG 내에서도 내년 아시아 본부의 주주총회를 한국에서 열 정도로 국내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다.

      리즈널 펀드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도 오랜만에 국내 대형 거래에 등장했다. 지난해 초 로엔엔터테인먼트 매각과 한국 버거킹 인수 이후 이렇다 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작년말과 올초 현대카드 지분 인수에 이어 국내 밀폐용기 1위업체인 락앤락 경영권 인수(6300억원)도 단행했다. 락앤락의 경우  2014년 조성한 3억8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 규모의 4호 블라인드펀드에서 출자했다.

      이외에도 5000억원 이상 대형 거래에 이름을 올린 운용사는 MBK파트너스 정도에 그쳤다. 지난해 말 4조8000억원의 4호 블라인드펀드 조성에 성공한 MBK파트너스는 올해도 인수에 집중했다. 연초 대성산업가스를 1조1500억원에 인수했고 올해 중순엔  6400억원 규모 이랜드리테일의 홈리빙사업인 모던하우스를 인수했다. 현재는 국내 최대 스크린골프업체 골프존과 손잡고 향후 국내 골프장 약 20곳을 인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한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사분할과 자산매각 등 특수한 상황에 투자하는 7억5000만달러(약 8000억원) 규모의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 결성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PEF들이 초대형 거래에서 활약했다면 국내 PEF들은 5000억원 미만 M&A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기업매각 또는 투자유치에 나선 대기업들과 호흡을 맞춘 것도 눈에 띄었다.

      약 1조3000억원의 블라인드펀드를 보유한 IMM PE는 올해 현대삼호중공업 프리IPO(4000억원)·에이블씨엔씨(3300억원)·더블유컨셉(612억원) 등에 투자했다. 한앤컴퍼니는 현대중공업 그룹이 보유한 호텔현대(2000억원)와 SK그룹의 중고차 유통사업인 SK엔카(2200억원) 인수에 성공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한화S&C에 2500억원을 투자했고 메디치인베스트먼트는 롯데글로벌로지스틱스에 2800억원을 투자했다.

      활발했던 PEF들의 활동과 달리 국내 대기업들의 행보는 제한적이었다. 정치적 문제를 비롯한 대내외 이슈로 인해 대기업들의 신사업 진출 움직임과 확장정책은 정체됐다. 자본시장 내 활동도 예년에 비해 크지 않았다. 그나마 도시바 메모리사업부와 실트론 등 굵직한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낸 SK그룹과 이재현 회장 복귀 이후 활발히 M&A에 나서고 있는 CJ그룹 등이 눈에 띄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상황이 비슷하게 연출돼 글로벌 PEF들은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기업쇼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ADT캡스와 CJ헬스케어 등 초대형 거래에서 글로벌 PEF들이 주요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 등 변혁기를 맞고 있는 대기업들 사이에서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PEF들의 역할은 더욱 부각될 것이란 평가다.

      여기에 내년도 PEF들의 엑시트 성과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이미 MBK파트너스의 ING생명·코웨이·딜라이브 등은 내년도 주요 잠재매물로 꼽힌다.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쌍용양회와 웅진식품은 역시 시장에서 탐내는 매물로 꼽힌다. 모건스탠리PE의 전주페이퍼, IMM PE의 할리스커피 역시 투자금 회수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