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한 KB, 붙인 신한...금융그룹 연말 인사서 드러난 '과제'는
입력 2017.12.29 07:00|수정 2018.01.02 07:46
    KB, 지주·계열사 겸직 조정…“문제 불거질 가능성도”
    신한, 비은행 강화 계속…하나는 ‘지배구조’가 뇌관
    우리, 성과주의 실험 시작…농협은 전략적 행장 인사
    “금융사, 정부 입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평가도
    • 금융그룹들의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에선 기존의 취약점에 대한 고민이 묻어났다. 내년엔 비은행 부문 강화 및 젊은 조직으로의 변화, 성과주의 확산과 조직 안정화 등이 금융사들의 당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역시 금융사들이 정권 교체기의 풍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KB금융그룹은 최근 조직개편 및 경영진 인사를 통해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구현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기존 8명이던 부행장을 3명으로 줄인 KB국민은행 인사가 대표적이다. 대신 실무에 밝은 젊고 혁신적인 전무·상무 보임을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부행장 중 실제 자리에서 물러난 인사는 이홍, 이용덕 부행장 정도다. 나머지는 승진(허인 행장)하거나 계열 내 자리이동 및 승진했다. 부행장 이하 임원진의 실적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KB금융은 지주-계열사간 임원 겸직체계도 손봤다. 데이터총괄임원(CDO)은 지주-은행-카드 3사 겸직을 실시하고, 계열사간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한 자본시장부문은 윤경은 KB증권 각자대표가 부문장을 겸직한다.

      지주 사장 직제는 폐지했다. 의사결정의 효율화를 위해서다. 아울러 은행과 겸직체제이던 리스크관리총괄임원(CRO), 글로벌전략총괄임원(CGSO), IT총괄임원(CITO)은 겸직 체제를 분리하기로 했다. 각 계열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지만, 은행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을 따져보면 겸직 해제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딩뱅크 경쟁이 버거워진 신한금융그룹은 계열사간 협업 및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조용병 회장의 '원(One) 신한' 구호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 중반 GIB(Group & Global Investment Banking) 부문을 설립한 데 이어, 연말 그룹 계열사 고유자산 투자 컨트롤타워인 GID(Group Investment Division)를 신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동환 GIB 부문장은 은행,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신한데이타시스템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데, GID 부문장 역시 신한금융투자의 김병철 부사장이 맡기로 했다. 신한금융은 ‘비은행출신 최초로 그룹사업부문장으로 선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자평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계열사 임원진의 세대 교체도 이뤄졌다. 지주와 은행, 카드와 증권, 생명과 자산운용 및 캐피탈 등 계열사 임원 중 18명이 임기만료로 퇴진했다. 1965년, 1966년생 임원이 사업그룹 담당 상무로 등용되는 등 경영진 평균 연령이 3년6개월 낮아졌다.

      그룹의 먹거리에 기여한 인력은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우영웅 신한지주 부사장은 그룹 사업포트폴리오를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신성장 분야 운영체계를 혁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ANZ은행 베트남 리테일 부문 인수를 총괄한 허영택 부행장(글로벌사업그룹)도 연임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져 왔다.

      하나금융그룹은 KEB하나은행이 소비자브랜드, 중앙영업 등 2개 그룹을 신설하기로 했다. 영업 및 관리, 조직의 안정적 성장에 기여한 황효상 리스크관리그룹 전무, 지성규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 부동사장이 각각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다만 금융시장에서는 하나금융의 ‘지배구조 개선안’에 눈길을 더 보내고 있다. 이사회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김정태 회장을 제외하고, 후계자 양성프로그램의 내실화를 꾀하겠다고 결의했다. 다소 노골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금융당국은 ‘셀프 연임’을 비판하며 지배구조 개선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윤종남 이사회 의장의 반발이 있기도 했으나, 정부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일종의 ‘성의표시’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선 회장을 회추위에서 제외하는 것보다는 회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외이사진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성과주의 정착과 조직 안정화라는 과제를 안고 새해를 맞게 됐다.

      전임 이광구 행장 체제에서 승승장구했던 임원 중 상당수가 이번 인사에서 물러났다. 우리은행 민영화와 이광구 행장 연임에 기여했던 가신 그룹의 퇴장으로 손태승 행장 친정체제가 구축됐다. 손 행장은 한일은행-상업은행 균형보다는 성과에 따른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이번에도 출신은행별 안배가 이뤄졌다.

      손태승 행장은 채용비리 논란에 시달린 조직을 안정화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조직쇄신을 위해 ‘경영혁신부’를 신설했고 추가적인 과제를 발굴, 실행해 나가기로 했다. 외환사업단은 외환그룹으로 격상됐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디지털화 하기 위한 글로벌디지털추진팀은 신설했다. 모두 손태승 행장이 글로벌부문을 이끌 때부터 중요시했던 영역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이대훈 전 농협상호금융 대표를 NH농협은행장에 선임했다. 조직 안에 불거진 지역색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호남 출신인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동향 출신 인사를 중용해 영향력을 높이려 할 것이란 우려가 있어 왔다. 최근 김 회장이 불법선거 혐의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선고 받자 상대적으로 소외 받아 온 다른 지역의 불만이 급격히 표면화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훈 행장은 경기 출신으로 지역색 논란에서 벗어나 있다.

      금융회사들은 저마다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방향성을 드러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정부의 입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정권 교체기에 으레 그랬듯 금융사에 대한 금융당국과 사정당국의 압박 수위가 높다. 외풍을 잘 견뎌온 신한금융을 빼고는 정부가 모든 금융사를 ‘접수’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리딩뱅크 수장조차 야당의 핵심 인사와 돈독한 관계란 이유로 고초를 겪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농협금융은 이대훈 행장을 ‘생산적·포용적 금융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중요한 움직임이 있을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디지털, IT에 대한 언급은 줄어든 분위기다. 이 또한 정부 정책과의 연관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역시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금융은 인프라에 기반한 산업이라 누가 이끌어도 큰 문제 없이 굴러간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며 “금융사들은 굳이 정부의 ‘고용 확대’ 정책에 반기를 든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까지 인력 감축을 수반하는 디지털 강화를 강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