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흔들리는 KB증권 '초대형 IB'
입력 2018.01.10 07:00|수정 2018.01.11 10:41
    단기금융업 인가 자진 철회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대표주관에도 이름 못올려
    각자 대표체제 하에선 IB업무 크기 힘들다는 지적도
    • '초대형 IB'를 내세우며 몸집 키우기에 나선 KB증권의 올해 투자금융(IB) 부문 실적에 대한 우려가 연초부터 제기되고 있다. 단기금융업 인가를 자진 철회한데다, 연초부터 쏟아져나온 조 단위 거래에 이름을 전혀 올리지 못하면서다.

      현재의 각자 대표 체제하에선 제대로 된 초대형 IB 사업이 힘들다는 지적까지 안팎에서 나오는 판국이다.

      KB증권은 최근 금융당국에 제출했던 단기금융업 인가를 자진 철회했다. 금리인상 등 환경 변화에 따른 단기금융업 사업성 재검토를 표면적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KB증권은 옛 현대증권 시절 대주주 신용공여와 관련 ‘기관 경고’ 조처를 받아 인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관측은 꾸준히 제기됐었다.

      단기금융업이 초대형 IB의 핵심사업이란 점에서 IB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가장 먼저 인가를 획득한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지난 11월에 출시한 첫 발행어음 상품은 출시 이틀 만에 500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 자금 일부를 상장전투자(Pre-IPO) 펀드 결성에 활용하기도 했다. 조만간 NH투자증권에 발행어음 사업 인가가 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덩치가 무색하게 대형 거래 참여에도 애를 먹고 있다. 양대 조선사의 조 단위 유상증자 대표주관을 모두 경쟁사에 뺏겼다. 삼성중공업(1조5000억원) 증자는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이 공동 대표주관사로 선정됐다. 현대중공업(1조3000억원) 증자는 NH투자증권이 대표주관을 맡았다. 삼성중공업 증자 인수단(신한,동부,한화)에도 KB증권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 자본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공개(IPO) 부문에서도 파이프라인이 초라하다. 올해 '4대 천왕'으로 불리는 SK루브리컨츠, 현대오일뱅크, 교보생명, 호텔롯데 주관사단에 변변히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2011년 현대오일뱅크 주관사 선정전에서는 은행계 경쟁증권사들이 대거 선정됐음에도 KB증권(당시 KB투자증권)만 떨어진 전력이 있다.

      KB증권은 지난해 인베스트조선 리그테이블 채권시장(DCM) 부문에선 전 부문 1위를 석권했다. 다만 이는 전신인 한누리투자증권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분야로, 합병 후 대형 증권사로 거듭난 KB증권의 성과라 보기엔 어렵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인수금융 부문에만 주관 7위로 간신히 이름을 올린 수준이다. 재무전략자문 부문은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냉정히 따져보면 단기금융업 인가 철회로 경쟁사 대비 투자를 위한 자본이 넉넉하지도 않고, 올해 예상되는 대형 자본조달 거래에서는 대부분 소외돼있는 셈이다. 주식시장(ECM) 부문에서 경쟁사인 신한금융투자에조차 밀리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조직 내부에 스며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초대형 IB사업이 표류하면서 IB사업 자체의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통합 증권사 출범 이후 상업투자은행(CIB) 시스템을 지렛대 삼아 '빅딜(big deal)에 참여하라'는 내부 영업 압박이 매우 컸지만, 역량과 시간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각자대표 체제의 문제점도 거론된다. KB증권은 IB부문은 전병조 사장이, 경영관리 등 리스크 부문은 윤경은 사장이 담당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두 부문을 각자 대표가 맡다 보니, 내부에서도 이견을 좁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경쟁자들은 공격적으로 딜에 참여하기 위해 나서는데 KB증권은 두 대표간 입장 차가 명확하다 보니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서기 힘든 구조다”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증자 대표주관 탈락의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황 부진에 따른 실권 물량에 대한 부담이 큰 딜이다 보니, 각 증권사에선 딜 참여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KB증권을 제외한 경쟁사들은 삼성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상당수의 리스크를 감내하더라도 증자 참여에 적극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반해 KB증권은 리스크 부담 등을 우려해 증자참여에 망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도 잇따른 딜 참여 실패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계 증권사로서의 한계도 보인다는 지적이다. 각자 대표 체제 속에 ‘돈이 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힘든데다, 은행계의 특성상 IB 업무에 적극적이기도 힘들다는 설명이다. 내부에선 증권사에 걸맞지 않는 인센티브 제도 등 불만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 KB금융그룹 관계자는 “은행계 특유의 보수적인 성격을 버리기 힘들어 보인다”라며 “초대형 IB를 꿈꾸며 합병을 했지만, 단기금융업 사업 인가마저 쉽지 않아 보여 합병 시너지가 나는데 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