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은 "글로벌 경쟁력 훼손돼" 반발도
'생산적 금융' 담당할 증권사 중요성 커져
금융지주 "증권사 키우자" CIB 열풍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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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대출과 관련해 강도 높은 직접 규제를 예고해서다. 은행계 금융지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한 상업투자은행(CIB) 체제에서 해법을 찾는 모양새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당국은 ▲주택담보대출의 위험 가중치(RW)를 높여 BIS 비율을 산정할 때 불이익을 주는 방안 ▲예대율 계산식에서 가계대출에 120% 수준의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각각 올 상·하반기 중 도입을 예고한 신(新) 총부채상환비율(DTI)·총체적상환능력심사(DSR) 규제와는 별개다.
은행권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가계대출은 급격히 줄이기 어려운데, 주담대 RW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BIS 비율) 등 지표가 하락하면 은행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예대율 산식 조정은 은행의 수익성 훼손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예대율은 당국 기준치(100%)를 겨우 충족하는 99~101% 수준. 가계대출에 가중치를 적용하면 6조원가량의 예금을 늘려야 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받은 시중은행도 있다. 5대 시중은행이 같은 시기에 수조원의 예금 조달에 나서면 금리 경쟁이 격화, 순이자마진(NIM) 하락이 예상된다.
당국은 '시중은행 가계대출·재무·위험관리 담당 실무진을 소집해 회의를 여는 등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은행권에서는 이 같은 강력한 규제 방안이 대부분 적용될 것으로 예상한다. '생산적 금융'이라는 목표를 향한 당국의 의지가 강력하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펼쳐왔다. 신한·우리·KB국민·KEB하나 4대 시중은행의 가계여신은 지난 2009년 말 274조9437억원에서 작년 3분기 말 425조5132억원으로 54.8%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여신은 268조1789억원에서 367조7289억원으로 37.1% 성장하는데 그쳤다. NH농협은행도 2012년 말부터 2017년 3분기 말까지 가계여신을 43.6% 확대했지만, 기업여신 성장률은 29.9%에 그쳤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자산 건전성을 개선하겠다는 미명 하에 손쉬운 영업과 이자 장사에만 몰두, 주택 자금 공급처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오죽하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모든 은행이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처럼 됐다'고 꼬집었겠느냐"고 전했다.
지난 해 초부터 가계대출을 향한 당국의 눈초리가 따가워지자, 시중은행들은 '소호(SOHO)대출'로 불리는 개인사업자대출을 늘리며 규제를 피해왔다. 작년 3분기 말 NH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시중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197조4000억원. 2016년 말 잔액이 180조6000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9개월여 만에 9.3%나 확대했다.
소호대출은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일부 자영업자가 생활비나 부동산 구입 자금으로 이를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소호대출이 '숨은 가계대출'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국은 올 3월부터 소호대출 규제에도 나선다. 자영업자의 소득과 신용등급·소득 대비 대출액 비율 등을 심사하라는 지침이다.
대기업 대출은 최근 수년간 부실로 인한 축소와, 대기업들의 은행 의존도 하락으로 인해 역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결국 은행에게 남은 '성장 동력'은 '중소기업'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은행계 금융지주들이 'CIB'로 대표되는 유니버설 뱅킹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일이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우선 은행은 위험 수용도가 낮아 초기 기업 투자가 대부분인 생산적 금융의 일선에 서기가 어렵다. 벤처캐피털(VC) 투자나 중견·중소기업 지분(equity) 투자, 상장 전 투자 유치, 코스닥 기업 공개(IPO) 참여 등은 창업투자회사나 증권사의 영역이다.
가계대출을 줄인 만큼 기업대출을 다시 늘리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초대형 투자은행(IB)을 위시한 증권사들이 이 시장에 많이 뛰어들었고, 대출 대신 자본시장을 택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몸이 날랜 영업 인력(RM)을 보유하고 있고, 투자 의사결정도 빠른 계열 증권사를 활용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한 은행계 금융지주 관계자는 "초대형 IB의 출범 초기 활약상이 기대만큼 크지 않고 발행어음 인가도 미뤄지는 등 다소 표류하는 감이 있지만, 증권사의 대형화라는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본다"면서 "계열 증권사가 약한 하나금융지주나 증권사를 보유하지 않은 우리은행의 고민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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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