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지만
"부작용 우려하더니 뒤늦게?"란 반응
"VC의 PEF 열풍 예전에 끝나"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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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년만에 손바닥을 뒤집어 창업투자회사에 '창업·벤처 PEF'(이하 벤처 PEF)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코스닥 활성화에 사모펀드(PEF)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오용 우려가 여전함에도 입장을 바꾼 정부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벤처 PEF 규제 완화를 코스닥 활성화와 연계시킨 금융당국의 논리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상 바뀐 건 '경영참여'까지 허용해줬다는 것밖에 없는데, 이는 창투사들에게도 부담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자본시장 혁신 방안'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작년 1월 도입된 벤처 PEF는 출자금 유치 후 2년 이내에 운용자산의 절반 이상을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법인세·출자금 소득공제(투자 단계)·증권거래세(회수 단계) 등이 면제된다.
기존에 창투사들은 벤처 PEF 조성이 불가능했다. 금융당국이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1월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당시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신설 규정 단서를 통해 창투사의 벤처 PEF 설립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창투사들이 규제 강도가 약한 벤처 PEF를 오용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벤처 PEF는 창투사가 벤처기업 투자 시 활용하는 창업투자조합과 달리 담보·보증 요구가 일부 가능하다. 구주 인수·상장사 투자·경영권 획득도 가능하다.
불과 1년만에 말을 바꾼 금융당국의 의도는 명확하다. VC업계의 '큰 손'인 창투사들이 적극적으로 PEF를 결성, 초기·벤처기업에 투자해 이들이 생존력을 갖추고 코스닥 상장 등 제도권에 올라올 때까지 투자해달라는 것이다.
당장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로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논리 자체에 헛점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벤처기업의 주요 투자회수(exit) 통로 중 하나가 코스닥 상장인건 맞지만, 비중은 극히 작다. 2015년말 기준 상장에 성공한 벤처기업은 전체 벤처기업 수(3만여 곳) 대비 1% 수준에 그친다.
얼마 되지 않는 상장사 역시 투자부터 상장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12년에 달한다. 이 때문에 평균 존속기간이 6.9년인 벤처펀드의 60%는 장외에서 지분을 매각하거나 투자금을 상환받아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해줄테니 벤처기업을 키워 코스닥에 상장시키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코스닥 상장 문턱을 낮추고, K-OTP(장외시장) 활성화도 함께 추진한다곤 하지만, 이는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벤처캐피털(VC)업계에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간 '밥그릇' 싸움 문제도 여전하다"며 "당시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제한했던 창투사의 벤처 PEF 설립을 뒤늦게 풀어준다니 황당하다"고 전했다.
기존 벤처투자 구조와 다른 건 경영참여·경영권 인수(buyout)가 가능해졌다는 점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도, 투자를 하는 창투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투자 형태다. 미국 실리콘밸리 일각에서는 VC가 투자 기업의 이사회에 이사를 파견하기도 하지만, 국내 VC업계의 인력풀과 자금 조달 구조로 볼때 이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다른 VC업계 관계자는"모태펀드를 관장하는 중기부 눈치도 봐야 하고, 벤처 PEF 제도 설립 시 당국이 내세웠던 메자닌(mezzanine)·프로젝트·지식재산권(IP) 투자는 창투조합으로도 가능해 (벤처 PEF가) 얼마나 흥행할 지는 모르겠다"며 "2010년대 초 창투업계에서 PEF 조성 열풍이 잠시 불었으나 투자와 관리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금세 잠잠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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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17일 13:4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