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이 불러온 혼란의 금융시장...거품 따라 커지는 불확실성
입력 2018.01.25 07:00|수정 2018.01.26 18:34
    '수익률 100%' 헤지펀드 화두
    코스닥, 16년 만에 900선 돌파
    가상화폐 폭락에도 투기 열풍

    정부, 벤처기업에 대규모 지원
    특정 부문에 돈 몰려 거품 키워
    미래 현실화? 거품 붕괴? 안갯속
    • # 이달 18일 장 마감 기준, 셀트리온그룹 상장사 3곳의 시가총액 합계는 61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의 모든 주식을 통째로 사들이고, 하나금융지주 지분 60%까지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규모다.

      #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연초 이후 일평균 거래규모는 6조원으로, 코스피 최근 일일 거래규모의 70%에 육박한다. 가상화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억, 수십억원의 수익이 난 계좌의 화면과 회사 사직서 사진을 함께 올리는 '탈출 인증'이 유행하고 있다.

      # 올해 벤처업계에 투자를 기다리고 있는 자금은 1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규모는 3조735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고, 오는 2020년까지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신한은행 9조원, 하나은행 3조5000억원 등 시중 은행들도 잇따라 혁신기업 지원·생산적 금융을 내세운 금융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연초 금융시장의 상황은 '돈의 힘'이 불러온 '혼란'으로 요약된다. 특정 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 계층 이동을 꿈꾸는 개인의 욕심, 정부의 성향에 따른 정책적 판단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특정 부문에 돈이 쏠려 왜곡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결과는 같다.

      왜곡은 필연적으로 거품을 만들어낸다. 거품에 적절한 시기에 올라타면 거대한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자칫 시기를 잘못 타면 붕괴를 맛볼 수 있다. 판단에 따라 성과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판'이 깔리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연말연초 국내 운용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수익률 100%' 펀드였다. 일부 중소형 운용사의 헤지펀드가 지난해 반도체 위주의 '몰빵 투자'를 통해 적게는 50%에서 크게는 100%의 수익을 냈다.

      이런 예외적인 케이스들이 출현하면서 투자전략 파트의 혼란을 야기했다. 연초 변동성을 최대한 줄이며 연 5~10% 안팎의 중위험 중수익 전략상품 출시를 기획하던 실무자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연 100% 수익률의 앵커(대표) 펀드가 필요하다'는 경영진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한 운용사 실무자는 "20년 안팎의 운용 경력을 가진 최고투자책임자(CIO)급들은 2000년과 2007년의 증시 호황, 그리고 2011년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으로 성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이 다시 시장에 올라타 '베타'(시장민감도)를 만끽할 시점이라고 판단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올해엔 바이오주가 랠리를 이어가며 이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한 펀드와 그렇지 않은 펀드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운용업계에선 최근 2~3주새 급등한 종목 위주로 순매도를 이어가며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지만, 바이오 외 마땅한 주도주가 없는 상황에서 언제 다시 담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오 대장주'로 꼽히는 셀트리온은 연초 이후 30%,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0%의 안팎의 주가 상승률을 보이는 중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밀집한 여의도의 밑바닥 기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4~5년간 지속된 저금리와 액티브 투자의 몰락을 지켜보며 기대 수익률을 한껏 낮췄던 펀드 시장이 다시 위험자산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올들어 경기호조, 달러 약세, 저유가 등으로 인해 글로벌 펀드 시장에서는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초 이후 2주간 전 세계적으로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 40억달러, 하이일드 채권펀드에 23억달러가 순유입됐다.

      가상화폐 투기 열풍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저금리와 더딘 임금 상승으로 자산 증식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연 1000% 수익'을 실현한 '자산'이 출현하자 이에 열광하는 반응이 나타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가계 금융자산은 3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절반인 1500조원은 연 수익률이 1~2%인 예금에 주로 묶여있다. 2012년 이후 5년간 서울 기준 주택매매 중위가격 상승률은 24.2%로 임금 상승률은 12.7%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열심히 일하고 이를 저축해봐야 집 한 채 마련하긴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지난 1년 연간 가격 상승률은 15배에 달했다. 최근 폭락을 감안해도 여전히 10배 이상의 가격이다. 다른 가상화폐인 리플은 같은 기간 저점 대비 최대 고점 기준 25배 올랐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기존 금융시장 테두리 내에서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는 것을 절감한 젊은 세대들이 더 과감하게 '모 아니면 도'식 투자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식 시장에선 '위험한 2부리그', '만년 마이너 시장'으로 치부되던 코스닥 시장의 돌아온 봄이 화두다. 일 평균 10조원 이상이 거래되며 2002년 이후 16년만에 처음으로 지수 900를 돌파했다.

      정부 차원의 부양책이 코스닥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대규모 정책 자금으로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코스닥 진입장벽을 끌어내렸다.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이 코스닥 상장을 통해 추가 자본 유치를 받을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일각에서는 IT 돌풍이 몰아치며 백여 곳 이상의 벤처기업이 코스닥에 입성했던 지난 2000년의 재림을 예상하기도 한다. 주요 증권사 기업공개(IPO) 관련 부서는 인원을 보강하고 성과 목표치를 높이는 등 대비에 나섰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단기 유동자금 규모는 지난해 1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오·코스닥 붐과 가상화폐 투기 열풍 역시 유동자금의 일부가 쏠리며 일어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돈이 돈을 밀어내며 가치를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가장 큰 걱정은 이런 현상들이 불안하지만 성큼 다가온 '미래'로 이어질지, 아니면 우려한대로 '거품 붕괴'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2000년 IT 거품은 2년을 채 가지 않았고, 랩(wrap) 투자 열풍을 불러온 차·화·정과 전업투자자 전성시대를 연 화장품도 1년6개월 이상 랠리를 지속하지 못했다. 실물 경제와는 괴리된 가상화폐 투자 열풍도 어떻게 되돌아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주 투자층인 청년층의 신용불량 증가와 신용대출 부실률 상승 등이 점쳐진다.

      한 증권사 리스크 담당 임원은 "이럴 때일수록 부화뇌동하면 안된다고 직원들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있다"며 "올해 성장율과 증시 전망은 밝지만, 그 어느 해보다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