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지배구조 개편 압박…힘 실리는 현대차 '정공법' 카드
입력 2018.01.29 07:00|수정 2018.01.31 09:13
    현대차 겨냥한 공정위 대기업 개혁 '코앞'
    정의선 부회장의 '부상'…다가오는 지배구조 개편 시점
    "현대차 경영권 이양 중 잡음 최소화 노력" 기대감
    "당장 비용절감 보단 명분과 실리 찾는 전략 필요" 한 목소리
    •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올해 안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 핵심으로 부상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제기된 수많은 경영권 승계 방안 대신, 지분 상속과 세금납부로 마무리 되는 '정공법'이 최선이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이 같은 목소리에 화답할지 주목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상반기까지 대기업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공익재단 ▲지주회사 등의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3월부터 정부 주도 대기업 개혁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특히 현대차그룹에 대해서 지난해 초부터 지속해서 압박수위를 높여왔고 지난 연말까지 결과물을 기대했으나 이렇다 할 답변은 얻어내지 못했다.

    •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 수많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이 오롯이 정의선 부회장에게 이양되는 작업도 필수적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상속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각각의 계열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 ▲3개사가 각각 인적 분할 후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오너 일가가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 또한 제기된 방안 중 하나였다.

      모든 방안은 언제든 시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현대차그룹은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필요한 수조원의 비용도 문제지만 수년간 내리막길을 달려온 사업을 정상화 하는 것이 시급했다.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를 비춰볼 때 정몽구 회장이 영향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을 주도하기란 쉽지 않다는 시선도 있었다.

      최근 들어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정의선 부회장은 미래차 기술개발 2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소극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최고경영자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달 중순엔 주주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경영 관행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주주들의 신뢰를 쌓기 위한 작업이란 평가다.

      그룹의 헤게모니가 정의선 부회장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기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의 초점이 '저비용 고효율'에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엔 ▲잡음 없는 경영권 이양 ▲주주가치 제고 ▲그룹 이미지 쇄신이 더 주목받고 있다. 비용 측면을 떠나 위험성(리스크)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란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안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동안 유력하게 검토되지 않았다"며 "다만 삼성이 승계 관련 잡음을 낸 전례가 있고 국내외 주주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현대차그룹이) 비용 절감보다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안이 낫다는 판단이다"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이 추진되면 계열사를 분할·합병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오너일가의 도덕성, 주주들의 형평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적어도 어느 한쪽의 주주들이 불만을 나타낼 수 있는 무리한 합병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정부가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경영권 승계를 눈앞에 둔 만큼 '구설수'를 최소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장기적으론 정의선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보유지분을 넘겨받아 경영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은 이 또한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 승계 후 상속세 납부를 통해 정당한 경영권 이양을 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정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등 비핵심 계열사 지분율이 높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재원 마련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다. 현재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5.2%)와 현대모비스(7%)의 지분 가치는 약 3조8000억원으로 50% 상속세율(최대주주 주식 할증 적용 시 65%)을 적용하면 2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조원의 세금을 내더라도 실(失)보단 득(得)이 클 것이란 의견도 있다. 거버넌스 이슈를 확실히 해결함으로써 정부와의 마찰을 줄이고 투자자들이 가진 불확실성도 잠재울 수 있다. 동시에 기업 이미지 쇄신과 글로벌기업으로서 위상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를 바라보는 국내 투자자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까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 빨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대차가 편법 없는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상속을 통해 기존 대기업들의 관행에서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창업이념을 계승하고 동시에 투자자와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