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에 '매물'로 낙인 찍힌 현대글로비스
입력 2018.02.07 07:00|수정 2018.02.08 10:56
    기관투자가 연일 '순매도'…2015년 후 주가 '반 토막'
    정의선 부회장 자금마련 창구…지분가치도 '뚝'
    선택지 줄어든 정 부회장, 건설계열 합병 '가능성'도
    • 현대글로비스가 기관투자가들에 외면받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결국엔 매각해야 하는 대상으로 '낙인' 찍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가치 하락으로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자금 마련에도 비상등이 켜질 것이란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을 향한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수위는 거세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부터 현대차에 대해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줄 것을 요구해 왔다. 현대차는 주주 추천 이사제도 도입을 발표하며 주주친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작업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이양작업이 시작되면 정의선 부회장이 마련해야 하는 자금은 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정 부회장이 자금 마련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정도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23.3%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현대엔지니어링은 11.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정 부회장은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보다 상장사인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활용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 그런데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고 정 부회장의 지분 가치도 예년에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지난해 말 신저가를 기록한 이후 올해 들어서도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5년 한때 주당 33만원에 달했던 주가는 현재 14만원에 채 못 미친다. 현재 시가를 고려한 정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2000억원 수준이다.

      이 같은 주가흐름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추이는 기관투자가들의 매매동향과 상당히 유사하다. 기관투자가들은 올 들어 단 이틀 동안만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순 매수했고 나머지는 매도세를 보였다.

      기관투자가들이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현대글로비스가 장기적으로 현대차그룹 내에서 입지가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국내 한 기관투자가는 "정의선 부회장이 승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로선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 외에 마땅한 방안이 없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떼어낼 회사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고 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2014년 폴란드 물류기업 아담폴(Adampol S.A)을 인수한 이후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추진하지 않았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M&A를 이어나가겠단 발표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뤄진 사례는 없다.

      현재 상황에선 대형 M&A와 대규모 투자가 주가를 부양할 '소재 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상승과 주가부양은 곧 정 부회장의 '매도'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지난해 2월 현대차 오너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의 보호예수기간이 끝나면서 정 부회장은 언제든 지분 매각에 나설 수 있다.

      현대차 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상승은 정 부회장이 넉넉한 승계자금을 마련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의 가치하락으로 인해 정의선 부회장의 자금 마련 선택지도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할 수 없다면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거나 사업 부문이 겹치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 방안 등이 유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현대차그룹이 핵심임원이던 박동욱 현대차 재경본부 부사장을 현대건설 사장으로 승진 발령함에 따라 이에 대한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 바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현재 상황에서 '합병'과 같은 주주들의 이견이 존재할만한 방안을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이 합병을 시도한다면 정의선 부회장이 자금 마련을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지배구조 개편과 지분승계가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