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과시즌 맞은 기업투자은행(CIB)…실적평가 체계 구축은 지지부진
입력 2018.02.09 07:00|수정 2018.02.12 09:41
    주요 금융지주 지난해 경쟁적으로 CIB 강화 추진
    은행-증권 협업 평가 중요해졌지만 시스템은 미진
    규제 및 회계·세무 등 난제 산적…단기 도입 난망
    • 금융지주들이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추진한 기업투자은행(CIB;Corporate Investment Bank) 체제가 첫 성과 보상 시기를 앞두고 있다. 그룹 내 협업은 강화하고 있으나 더블카운팅 등 실적 평가 시스템 구축은 더뎌 불만이 표면화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실적인 난관도 많아 계량적 평가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최근 성과급 산정을 마쳤거나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통상 2월 20일을 전후해 전년 실적에 대한 성과급을 지급한다.

      개별 금융사라면 내부 평가 기준에 따라 보상하면 된다. 그러나 계열사 역량을 하나로 묶기 위해 CIB 체제를 도입한 금융지주들은 고민은 깊다. 협업 시 실적을 중복 집계하는 ‘더블카운팅’ 등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모습이다.

      KB금융그룹은 계열사 중 KB국민은행이 일부 더블카운팅을 시행하고 있다. 100억원 규모 거래를 영업점이 발굴하고 본점이 자금을 집행한 경우, 과거엔 그에 따른 이익만 나누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본점 100억원 외에 영업점도 일부 집행 실적을 인정받을 길이 열려 있다. 지난해까지 CIB를 이끈 전귀상 부행장이 고안한 부분(Partial) 더블카운팅 방식이다.

      은행과 증권 사이에서는 더블카운팅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은행과 증권이 공동으로 투자를 집행한 경우 핵심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ex) 상 협업 점수를 높게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기적 해결책인데 이 역시 실제 시행에선 더블카운팅만큼 정교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신한금융그룹의 사정도 비슷하다. 100억원 규모 거래를 은행과 증권이 함께 했다고 해도 두 기관에 모두 100억원씩의 실적을 인정해주긴 어렵다. 실제 벌어들이는 돈을 기관별 기여 정도에 따라 나누거나, 인센티브 제도에 민감한 증권사에 수행 실적을 모두 밀어주고 은행은 일부만 인정받는 등 사안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이동환 GIB사업부문장이 총괄자로서 계열사간 협업과 성과 분배를 잘 조정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경우엔 초기 단계부터 실무 선에서 의견을 조율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큰 갈등은 없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계열사간 실적 평가는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며 “아직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만든다는 방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One)IB’를 표방한 하나금융그룹은 은행과 증권 어느 쪽이든 거래를 발굴하면 다른 쪽도 같이 참여하는 방식의 협업을 꾀해 왔다. 이를 통해 계열사들끼리, 혹은 그 안의 각 부서들 간의 벽은 사라졌지만 협업이 썩 원활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원IB 도입으로 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거래를 발굴한 사람이 끝까지 주도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거래라면 굳이 다른 부서와 실적과 성과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NH농협금융그룹도 은행 안에서는 더블카운팅 제도를 활용하곤 했다. 영업점이 거래를 발굴하고 본점이 자금을 집행했다면 영업점이 실제 자금 집행이 없었더라도 일정 부분 기여도를 인정하는 형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증권간 관계 정립은 쉽지 않다. 한 곳이 발굴한 거래에 다른 곳이 참여했을 경우 어떻게 실적을 책정할 것인지 명확히 정해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전반의 과제인 ‘범(汎) 농협 시너지 제고’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평가하는 정도다. 회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그룹 문화상 계열사 각각의 독립적 성과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지주들이 CIB 체제를 완전히 정착시키기 위해선 언제까지 주먹구구, 혹은 사안마다 따져 실적과 성과를 부여할 순 없다. 계열사간 성과를 계량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평가에서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쪽의 불만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금융지주들이라고 이를 모를리 없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은행과 증권은 한 그룹 안에서 함께 일을 하더라도 결국 별도 법인이라는 점이다. 법이 은행과 증권에 허용하는 업무 범위가 다른데 무리해서 실적을 중복 반영하려다가는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 요즘처럼 가뜩이나 인사, 채용비리 등에 대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감시가 삼엄한 때에는 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법인간 정보교류차단(차이니즈월)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은 지주 선에서 업무를 조율하고 실적을 나눠줘야 하는데 회계나 세무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거래 규모 이상의 실적이 중복으로 집계된다면 ‘가상의 실적’이 늘어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지주의 실적으로도 볼 수 있을지, 혹은 계열사들은 이를 통해 벌어들이게 된 돈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할 지 등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한다.

      금융지주 CIB 부서 관계자는 “더블카운팅은 실제 거래보다 많은 실적이 잡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은 곳이 실적만 부풀리는 도덕적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한편으론 집계된 실적 이상의 목표를 매년 새로 받아야 하는 부담도 생기기 때문에 현업 부서에선 더블카운팅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