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PE 대표는 '1년짜리-비전문가-회장 순장조'? 한숨 쉬는 LP들
입력 2018.02.09 07:00|수정 2018.02.12 09:42
    초대 대표이사 제외하고 단 한번도 임기채운적 없어
    2호 블라인드 수익률 높아도 블라인드 조성 못해
    경험부재ㆍ11개월 근무 이어져..새 대표도 '홍보실' 출신
    • "또 바뀌었어요? 대체 몇 번째야"

      수년전 국내 사모펀드(PEF) 투자자(LP)들이 우리PE 대표이사 교체 때마다 보였던 반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PE는 짧게는 8년, 길게는 10년 이상 운용되는 대표적인 장기 투자 대상이다.

      그러나 13년의 우리PE 역사중 임기를 채운 대표는 단 1명에 그친다. 지난 수년간은 정년을 앞둔 비전문가들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와 짧으면 11개월, 길어야 1년여를 채우고 떠났다.

      그리고 최근 얘기는 다시 불거지고 있다. 손태승 행장 취임 이후에도 같은 일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사실 우리PE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 우리PE는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당시인 2005년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열사로 분사했다. 조직을 사내에 두느냐, 계열사로 분사하느냐를 놓고 여러 논란을 거치다 계열사로 떼냈다. 이후 2100억원의 우리PE 1호를 런칭, 우방과 우방타워랜드를 비롯, 다양한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화제가 됐던 금호종금 (현 우리종합금융) 인수도 이 무렵 이뤄졌다.

      실패로 돌아건 투자 건도 적지 않았지만 초대 이인영 대표는 한 차례 연임까지하며 6년간 재직했다. 박병원 회장이 물러난 이후 취임한 이팔성 회장도 이인영 대표 임기를 채우게 하고서 새 대표를 임명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2대 이승주 대표는 블랙스톤코리아와 함께 2번째 블라인드 펀드인 우리-블랙스톤1호(6061억원)을 조성, 아이마켓코리아-NS홈쇼핑-현대로지스틱스, 그리고 타이틀리스트까지 성과가 높은 투자를 이뤄냈다. 펀드 규모도 커졌지만 내부수익률(Gross IRR)이 15~20%는 나올 것으로 예상됐고, 추가적인 블라인드 펀드 조성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대표이사로 재직한지 1년6개월만에 퇴임하게 됐다.

      이후 이순우 회장(행장) 재직 시절. 과거 우리PE에서 근무하다 투자업계로 나가 있던 최은옥 대표가 영입, 회사 기틀을 가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최 대표의 임기도 1년4개월에 그쳤다. 연임이 예상됐던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박근혜 정부 입김에 이광구 행장으로 교체된 여파 때문. 이순우 행장 퇴임과 함께 최은옥 대표도 교체됐다.

      이후 우리PE의 '암흑기'가 본격화 됐다.

      이광구 행장 이후 취임한 김병효 대표의 경우 당시 나이가 60세였다. 경력은 우리은행 청량리-압구정지점장, 주택금융사업단장, 경영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고 우리아비바생명 대표를 거친것이 대부분. 사석에서 "저는 PE 잘 몰라요"라는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딱 11개월간 우리 PE대표를 역임했다.

      그 다음 내려온 김옥정 대표도 비슷했다. 58세 나이에 우리PE 대표로 취임했다. 직전 경력을 따져봐도 우리은행 지점장(중계본동ㆍ대치동ㆍ올림픽지점)을 거쳐 WM사업단, 리스크관리본부 등에서 일한 정도가 전부다. 여전히 PE 부문 경력은 거의 전무한 인사였고, 이로 인해 재임기간 투자ㆍ펀드레이징 등에서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옥정 대표는 1년11개월을 근무하다가 채용비리 이슈로 이광구 행장이 자진사임하고 딱 한 달 뒤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전형적인 '회장 순장조'였다.

      결과적으로 그간 우리은행은 정년 언저리에 있는, 전문성 없는 은행권 인사들만 골라서 국민연금ㆍ보험사ㆍ연기금들의 돈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회사의 리더로 보냈던 셈이다. 제 아무리 계열사라고 해도 투자기관들로부터 높은 수수료를 받아가며 운영하는 회사 대표를 본사의 회전문 인사들로 채웠다. 전형적인 '대리인 이슈'(Agency Problem)가 불거진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 LP들은 우리PE 새 대표들이 취임 인사로 찾아올때마다 냉담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 PE업계 대표는 "해외 투자자라면 기존 투자금을 다 빼버리거나 극단적으로 소송도 불사할 수 있을 만한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우리PE가 2호 펀드로 높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 매번 기관들의 공개경쟁 출자에서 탈락한 일이 잦았던 것도 같은 이유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심지어 우리PE가 지난 2016년 8월 사명에 '자산운용'을 추가하는데도 이런 흐름이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있다. 이제 PE 업무보다는 다른 대체투자부문에서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발현됐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광구 행장이 물러나고 새 행장 취임으로 6번째로 우리PE 대표가 바뀌었지만 이런 흐름은 변치 않았다.

      작년말 취임한 신임 권광석 대표의 경우. 직전 맡았던 'IB그룹장' 이력은 불과 10개월(2017년2월~12월)에 그친다. 그 이전에는 은행 지점을 거쳐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 당시 회장실에 근무하고, 영업본부장 등을 거치다가 2013년부터는 홍보실과 대외협력단 등에서 근무한 이력이 대부분이다.

      같은 은행계 PE로서 역시 '태생적인 한계'를 갖춘 신한PE만 해도 인사에 대해서는 상황이 달랐다.

    • 신한PE는 초창기 국민연금 블라인드 펀드 운용사로 수차례 선정되는 등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운용했던 펀드의 트랙레코드는 그리 높지 않았다. 아직 '전주페이퍼' 매각이라는 큰 엑시트건을 남겨 놓고 있다. 수익률은 오히려 우리PE2호가 더 앞서 있다.

      하지만 운용인력 관리면에서는 달랐다. 초대 이진용 대표는 연임을 거쳐 6년간 재직햇고, 양기석 대표도 2번째 임기까지 이어지다가 유안타인베스트먼트로 이직했다. 김종규 대표도 3년 임기를 다 채웠다.

      특히 이들은 신한PE 설립 초창기부터 함께 일해온 이력이 있다. 또 양기석 대표 등을 비롯, 대부분이 일찌감치 국내 투자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었다. 지난해에도 내부 승진을 먼저 검토하다가 7월 신한생명 투자부문을 오랫동안 담당해 경험이 많은 김희송 대표를 내세웠다.

      그 사이 핵심 펀드매니저들이 다수 빠져나간 약점이 있지만 이를 만회하고자 영역을 단순한 PE가 아닌, 대체투자부문으로 확대하고 관련 인력 충원도 단행했다. '뉴욕 랜드마크 빌딩 원월드와이드플라자'같은 레코드도 갖췄다.

      결국 지금 우리PE에 대한 평가는 우리은행의 해묵은 인사관행이 스스로 야기한 상황이라 볼 수밖에 없다.

      요즘 국내 LP들에게 우리PE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면 대답조차 하기를 꺼린다. '논외대상'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