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이익 전망치 낮춰달라"는 삼성전자
입력 2018.02.13 07:00|수정 2018.02.14 09:16
    "올해 1분기 안좋을 것"…증권가 실적 전망치 조정 나선 삼성전자
    "이례적 일"…이유 두고 설왕설래
    긴장감 조성? 지배구조 개편 속도?…후속 조치 둔 관전평도
    • 삼성전자가 담당 애널리스트들에게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을 낮춰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통해 비공개로 알린 데다 회사가 직접 나서 보수적 전망을 편 점에 대해 시장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 석방과 맞물려 전사 차원의 긴장감 조성에 나섰다는 평가와 함께 그룹 차원 지배구조 변화와 연계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복수의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에게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치를 낮춰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점은 지난해 4분기 컨퍼런스콜(투자자설명회)이 열린 2월1일이다. 컨퍼런스콜 이후 열린 국내 투자자 대상 비공개 논딜로드쇼(NDR)에서 올해 실적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일부 애널리스트들에겐 직접 투자자홍보(IR)팀에서 전화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는 "공개된 컨콜에서 회사가 직접 올해 전망이 안 좋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하긴 어렵다보니 컨콜 이후 비공개 자리에서 했을 수 있다"며 "회사가 에둘러 말해도 애널리스트마다 체감하는 게 다를 수 있다 보니 직접 전화도 병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2월1일 삼성전자 주가 추이를 보더라도 4분기 역대 분기 최고 수준의 이익 발표와 더불어 액면분할을 밝히며 장 초반 상승했다. 다만 회사의 보수적인 전망 발표가 증권가에 알려지고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가 이어지며 주가는 하락으로 반전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당일에도 연기금과 외인 중심으로 매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를 두고 여의도가 들썩였다"고 설명했다.

      NDR에 참석한 복수의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연결 실적으로 잡히는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의 업황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에 독점 공급해온 OLED 디스플레이가 아이폰X의 판매량 부진으로 인해 타격을 입은 점이 거론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플 아이폰 신규모델 공급에 맞춰 OLED 생산라인을 지난해 월 1만5000장(15K) 수준에서 올해 10만5000장(105K)수준까지 증설했다. 현재 아이폰X의 부진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애플 공급라인 가동률은 40%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는 "올해 4월과 5월 계획된 애플향(向) 생산라인 가동이 거의 없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시장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2분기엔 적자가 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삼성디스플레이의 어닝쇼크를 감안하더라도 직접 나서 실적 전망을 낮추라는 삼성전자의 의도에 대해선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이미 아이폰X의 단종으로 인한 실적 악화 우려는 업계에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도 이에 맞춰 전망치를 조정해 놓았다. "언제부터 삼성전자가 이렇게 친절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 사이에선 삼성전자가 NDR때 올해 실적이 60조원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하향유도를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당장 4분기 실적이 15조원이 나온 상황에서 연간 전망을 회사가 그런 식으로 내놓으면 사실상 올해는 주식을 ‘팔라’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1분기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일 때 삼성전자가 '각 증권사 가이던스가 조금 낮지 않냐'는 말은 넌지시 했었는데 회사가 향후 실적을 부정적으로 얘기한 건 이례적이다”고 전했다.

      이어 “일부 외국계 투자자들은 국내 증권사들의 컨센서스에 회사 실적이 뚜렷하게 못미칠 경우 회사 IR부서가 대응을 못했다고 간주하는 경향도 있다”라며 “회사에선 솔직하게 말은 못하고 시장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가끔 시장 전망치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뚜렷한 이유가 잡히지 않다보니 증권가에선 사업적인 해석 외 다른 의도를 검토하기도 한다.

      우선 공통적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관전평은 "1분기 위기감을 조성한 후 향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복귀와 함께 실적을 회복하려는 의도"다.

      이재용 부회장의 복귀와 맞물려 숙제로 놓인 지배구조 개편 방향과 맞물려 해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계에 오는 3월까지 모범 지배구조를 갖출 것을 제시했고, 삼성그룹도 그 대상이다. 1년여 가까운 수감생활을 겪은 이 부회장 입장에선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룹 지배력도 유지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맞이한 상황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지주 담당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안에 담긴 주요 골자인 금산분리 강화, 금융통합감독 시스템, 순환출자 해소, 자사주 활용 제한, 일감몰아주기 해소 등은 삼성전자를 둘러싼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의 개편이 전제돼야 한다"라며 "최근 금융통합감독시스템 시행에 따른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전자 지분 매각 압박과 삼성물산의 비주력사업·자산 매각 및 현금 확보도 연장선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