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새 먹거리' 전장사업, 반도체 대체할 수 있을까
입력 2018.02.26 07:00|수정 2018.02.27 09:18
    삼성전자 2016년 하만 인수
    야심 찬 전장사업 진출…후속 투자 및 성과는 '미미'
    이재용 부회장 복귀 후 전장사업 확대에 '관심'
    •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은 하만(Harman)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전장사업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추진력을 잃었다. 하만 역시 삼성전자의 기존사업과 이렇다 할 시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전장사업이 과연 삼성전자의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전장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국내 기업 M&A 역사상 최대 규모다. 2014년 이재용 부회장 체제 하에서 가장 큰 투자였다. 하만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는 향후 전장기업으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고 투자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삼성전자는 2015년 말 전장사업팀을 신설했고, 세계 1위 하만을 인수하면서 시장진입에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공격적으로 전장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이란 시장의 기대와 달리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오너의 부재 속에 삼성전자의 전장사업 또는 하만과 시너지를 낼 만한 기업 M&A는 전무했다. 하만과 삼성전자의 시너지 또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박종환 부사장이 이끄는 전장사업팀의 위상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고 50여명으로 구성된 조직 규모도 변함이 없다.

      하만은 지난해 3분기 누적기준으로 4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전체사업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 수준이다. 올해 초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삼성전자는 하만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지털 콕핏'을 선보이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상용화와 실적을 만들어 내기까진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하만의 시너지를 논하긴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적어도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향후 어떤 방식의 투자를 이어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굉장히 잘 한 거래라는 평가가 많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며 "반도체와 스마트폰의 향후 업황에 대해선 여전히 엇갈리기 때문에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명확한 발표가 없다면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의 전체적인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같이 자율주행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관련 업체들에 대한 꾸준한 M&A와 지분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ARM홀딩스를 33조원에 사들였고 최근 들어선 차량공유·로봇·사물인터넷(IoT) 등 기업에 무서운 속도로 투자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뱅크는 미국 기업들이 빅데이터와 자율주행 시스템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판단하고 나머지 인프라 부문을 선점하겠다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다"며 "삼성전자 또한 이 같은 방향성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못하는 동안 완성차 업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장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기존에 삼성전자에 집중돼 있었다면 최근엔 현대자동차그룹에 모이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의 자율주행 전문기업인 오로라(Aurora)와 손잡고 2021년까지 레벨4 수준의 도심형 자율주행 시스템을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오로라가 어떤 완성차 업체와 손을 잡을지에 많은 관심이 쏠렸는데 결국 현대차가 파트너로 낙점됐다.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오로라와 협업을 시도했으나 정의선 부회장의 끊임없는 구애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는 지난달 스마트카(자율주행·커넥티드카), 로봇·인공지능을 비롯한 5대 신사업에 20조원 이상을 투자할 것을 밝혔고 그랩(Grab)과 같은 공유차 업체에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전략기술본부를 중심으로 현대차가 전장, 자율주행 부문에 힘을 실어가면서 향후 '시스템 프로바이더(System provider)'로 나아가는 데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자율주행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가 지향하는 영역과 겹치고 결국엔 경쟁 관계에 놓일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과 삼성이 지향하는 바가 궁극적으로는 같다"며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선 향후 수년 내에 헤게모니를 쥘 업체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완성차 업체와 삼성전자 간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만 인수를 이끌었던 손영권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장은 지난해 삼성의 M&A전략이 자동차 전장·디지털 헬스케어·비즈니스 소프트웨어 등에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실적 성장에 부담을 느끼면서 이를 대체할 성장엔진 마련이 시급하다는 절박함마저 묻어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 이후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서 어떠한 확장전략을 보여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