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스타·노조·정치권 모두에 휘둘리는 産銀?
입력 2018.03.06 07:00|수정 2018.03.06 08:29
    '치킨게임' 통한 노조·헐값에도 주도권 가진 더블스타
    '파국'카드 꺼냈지만…끄떡없는 노조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도권 힘 빠진것 아니냐 우려도
    • 산업은행이 물밑으로 진행하던 중국 더블스타타이어(이하 더블스타)로의 매각안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이번에 매각되지 않으면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다른 어떤 플레이어들에게도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노조의 벽은 여전히 높고 '해외매각 결사반대'라는 강경대응으로 맞불을 놓았다. 회사는 불과 반 년여 만에 기업가치가 크게 쪼그라들었지만 인수자보다 매각자인 산업은행이 더 초조해진 상황이다.

      금호타이어 구조조정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예견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권 눈치를 살피다 구조조정 주도권을 잃었고,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반년 새 헐값 됐어도 협상 주도하는 中 더블스타

      산업은행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더블스타와의 금호타이어 매각 협상 진행을 공개했다. 더블스타는 노조의 해외매각 동의, 정부 부처 차원의 협조 등 조건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더블스타도 길어지는 공방에 지쳐가지만 인수 기회를 놓기엔 조건이 너무도 좋다.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데다, 불과 몇 달 새 인수조건은 확연히 좋아졌다. 작년에 협상이 잘 됐더라면 1조원 가까운 돈을 들여 채권단 보유 구주를 인수할 뻔했다. 당시 더블스타 실무자가 문책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 그렇다고 산업은행이 인수 측에 목소리를 더 낼 입장도 안 된다. 국내 인수 후보를 찾긴 사실상 쉽지 않다. 이대현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은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너지를 낼 만한 기업들은 출자전환, 신규자금 투입, 채무 감축 등 채권단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인수 검토를 했던 곳은 SK그룹 정도다. SK㈜ 내 M&A를 담당하는 PM실에서 인수 작업을 진행했었다. 금호타이어 문제를 해결해주면 정부 차원에서 추후 SK그룹의 중국 사업 진출 시 기회를 열어 준다는 설도 돌았다. 그러나 채권단은 강성 노조로부터 백기를 받아달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産銀 "정치권 압박 없다"지만…매각 발표 당일 회장 면담 요청한 광주 시장

      산업은행은 지난해 중국 더블스타로의 매각에 실패했다. 박삼구 회장의 상표권 몽니도 있었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해외 매각 반대 기류도 영향을 미쳤다. 방산사업을 이유로 매각 승인을 수차례 반려한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표적이다. 더블스타 측이 이번엔 산자부 등 정부기관 사전 허가를 선결조건으로 명시한 점도 무관하지 않다.

      이대현 수석부행장은 금호타이어 매각과 정치권의 압력은 무관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만 해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윤장현 광주광역시장과 면담해야 했다. 수뇌부의 인식이 어떻든 과거 산업은행 내부에선 “청와대와 정치권 등쌀에 힘들다. 차라리 박삼구 회장 상대가 편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있었다.

      산업은행은 더블스타로의 매각이 무산될 경우 ‘파국을 맞을 수 있다’며 법정관리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미 정치권 눈치에 한 번 무산된 카드다.

      산업은행은 작년 12월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금호타이어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 신청 서류까지 마련했다. 회사가 외부 지원 없인 임직원 임금과 시설대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사실상 ‘부도’ 상태기 때문에 원칙대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추진해온 담당 실무진들만 갑작스레 옷을 벗었다. 투자업계와 산업은행 내부에선 호남 일자리를 중시하는 정부의 의중을 미리 읽지 못해 ‘희생양’이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정관리 불사 '강공'에도 꿈쩍 않는 노조…"치킨게임이 정답?"

      "채권단이 말로는 강경하게 나온다하고 나오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미룬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보니 노조 내부에서도 두려움 없이 협상장에 나서고 있다"(노조 관계자)

      산업은행이 무딘 칼만 쥔 상황에서 시한은 촉박해지고 있다.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간 한국GM과 얽히면 산업은행의 입지는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이 배수진을 친 모양새지만 금호타이어 노조는 머리 위에서 노는 모습이다. 산업은행이 기자회견을 하는 사이 상경 투쟁으로 맞불을 놨다. 노조 관계자는 "한국GM 사태서 보듯 더블스타가 고용을 3년 보장해줘도 해외 자본은 언제든 철수할 수 있다. 해외 매각은 안 된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정부를 상대로 이익을 극대화할 방법은 ‘치킨게임’ 뿐이라는 전례를 남긴 셈이다. 향후 구조조정 테이블에 앉을 한국GM 노조 등에도 영감을 줬다.

      ◇産銀 내부…"구조조정 안 맡긴다는데 굳이"

      산업은행 내 임직원의 사기도 바닥을 찍었다.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한국GM로 이어지는 ‘대우 사태’로 여론과 정치권의 포화를 맞고 있다. 물론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수후보들에 상표권 사용 희망 조건을 받았다는 원죄가 희석될 순 없다. 다만 산업은행도 이동걸 신임 회장 취임 이후 전열을 다듬고 쇄신 의지를 밝혀왔다. 이번 금호타이어 매각 성공이 급박하고 절실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금융논리가 아닌 산업논리로 접근하겠다”는 암묵적 지침을 내려 사실상 산업은행에서 구조조정 기능을 떼겠다는 방침이다. 10여년 이상 산업은행 내 구조조정실을 사실상 만들어 이끈 '롤모델'도 자리를 떴다. 특유의 보신주의는 짙어지고 사명감은 옅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덧 IB업계에서는 "이제 산은을 상대하는 거래가 가장 반갑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거래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에게 산업은행 탓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기 가장 쉬운 상대가 됐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