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우위 섰던 CVC·"끝난 것 아니다" 칼라일 눈치싸움 시작
중간지주 전환과 맞물린 SKT, 인수전 빠져도 '큰 손 마케팅' 효과
투자자들은 '시큰둥'…"3조면 하이닉스 산 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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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가 ADT캡스 인수전에 참여한다. “통신업 탈피”를 강조해온 박정호 사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중간지주사 전환까지 추진하며 대수술에 나선 SKT 입장에서도 비(非)통신 분야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지부진하던 ADT캡스 매각전도 활기를 찾는 분위기지만 SKT가 넘어야 할 고비도 만만치 않다. ‘3조원’이 거론되는 인수가격을 둔 논란도 여전하지만, SKT의 M&A 발굴 능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지 않은 점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SKT가 인수전을 완주하더라도 ‘명분’을 만드는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것이란 분석이다.
7일 IB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SKT)은 호주 맥쿼리 인프라자산운용(MIRA)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ADT캡스 인수전에 참여한다. 본입찰은 지난달 19일 마감됐고 경쟁 후보인 CVC캐피탈이 구속력 있는 제안은 제출한 상황이다. 맥쿼리 컨소시엄 측은 SKT의 참여가 늦어진 만큼 일정기간 추가 실사 기간을 요구했고 SKT도 조만간 구속력 있는 제안을 제출하기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맥쿼리가 단독으로 꾸려온 인수 작업에 SKT가 발을 얹은 형국이다. 맥쿼리는 이미 인수금융 대주단 구성을 마쳐뒀기 때문에 SKT와 지분 투자 규모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 SKT와 협상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맥쿼리 단독으로 본입찰에 참여하면 된다.
그간 관심 없다던 SKT가 부상하며 매각자인 칼라일은 한 시름 덜게 됐다. CVC란 유력 후보가 있어 거래 종결 가능성은 컸지만 가격은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CVC는 CJ헬스케어에 이어 또 한번 SI를 경쟁자로 맞게 되며 부담이 커졌다.
매각 측에선 CVC가 승리자가 아닐 수 있다는 뉘앙스를 꾸준히 풍겨오기도 했다. SK와 맥쿼리는 과거 SK E&S를 공동 운영하는 등 인연을 이어왔고 ADT캡스 매각주관사 모건스탠리와도 최근 일본 도시바 지분 투자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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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주사 선언 후 자회사 구축 고민하는 SKT, 무산되도 M&A시장에 ‘큰 손’ 과시 효과
SKT는 완주 여부와 무관하게 SKT가 비통신 부문 M&A에 향후 큰 손으로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더 나아가 업계에선 현재 SKT가 추진 중인 ‘지주사 전환’과 연계하는 분석도 나온다.
박정호 사장은 부임 직후 SKT의 체질 변화를 강조했다. 부임 이전에도 SKT가 IT 혹은 ICT 기업이 아닌 규제업종인 통신으로 저평가받는 점에 불만을 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사장이 평소 롤모델로 꼽아온 ‘소프트 뱅크’ 모델처럼 중간지주사가 관리 역할을 맡고, 통신은 사업 자회사 중 하나로 분류해 평가받겠다는 의도다. 을지로 본사 22층에 지주사 전환 태스크포스(TF) 꾸려 막바지 작업 중으로 전해진다.
분할은 어디까지나 외형 변화일 뿐 내실을 채워야 하는 고민은 여전하다. 본업인 통신을 담당할 SK텔레콤과 반도체사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곤 뚜렷한 비통신분야가 없는 점은 과제다. 유망 사업으로 키워온 이커머스 업체 SK플래닛은 여전히 애물단지다. 최근에도 '스마트팩토리'를 내세워 중견기업 톱텍 인수를 추진했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박정호 사장은 올해부터 SK그룹 수펙스내 ICT위원장을 맡는 등 그룹 미래 사업도 이끌게 됐다. 본인이 강점을 가진 M&A로 존재감을 보여야 할 시기다.
오히려 수펙스협의회와 SK㈜를 이끄는 조대식 사장이 ‘투자전문지주회사’를 내세워 글로벌 M&A에서 성과를 더 쌓아가고 있다.
반전을 꾀할 SKT 입장에서 규모는 물론, 인수 후 시너지 측면에서 접근하기 가장 쉽고 또 가까이 있었던 매물은 결국 ADT캡스다. 실제 중간지주사 추진이 처음 알려진 지난해 9월 제주도 간담회서부터 박 사장은 "대한민국에서 보안사업을 우리보다 잘할 수 있는 곳이 있느냐"며 인수 의지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 논란 여전·투자자 신뢰 잃은 SKT ‘M&A 역량’도 변수로
참전이 확정될 경우 거론되는 문제는 역시 ADT캡스의 가격이다. 업계 1위 상장사 에스원이 점유율은 두 배를 훌쩍 넘는 데다, 건물관리 사업까지 보유했지만 시가총액이 3조5000억인 수준이다. ADT캡스의 매각가가 3조원까지 거론된다는 점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3조원은 SKT가 과거 하이닉스를 품었던 금액에 육박한다.
SKT의 현금창출력은 여전히 탄탄하지만, 선뜻 뭉칫돈을 꺼내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에도 역대 최고 호황을 맞은 자회사 SK하이닉스로부터 올라온 배당을 주주에게 나누기보다 향후 4차 산업을 준비하는 데 활용하겠다 밝혔다. 주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지를 수 있는' 금액 측면에선 CVC가 우위에 있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CVC는 최근 CJ헬스케어 인수전에서도 후보 중 가장 큰 금액을 써냈지만, SI와 FI가 합을 맞춘 한국콜마 컨소시엄에 밀렸다. ADT캡스마저 놓치면 한국사무소 철수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사활을 거는 상황이다.
SKT가 인수 의지를 굳힐 경우 투자자에 내세울 ‘명분 만들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벌써 반응은 엇갈린다.
3조원이란 기회비용을 고려했을 때 ADT캡스가 회사의 중장기 미래 방향성을 보이기엔 부족한 딜(Deal)이란 평가가 나온다.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 그래픽카드 분야 선두업체 엔비디아 투자, 카쉐어링 업체 우버 인수 등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투자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조 단위 투자를 내건 SKT가 여전히 내수 기반의 캐시카우 업체 발굴에 치우쳤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다.
한 SKT 담당 애널리스트는 "인적 분할을 통한 중간지주 전환은 어디까지나 외형 변화일 뿐 중요한건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회사를 키울 지에 대한 비전 제시“라며 ”여전히 투자자들은 SKT가 밝힌 장기 비전이 분명하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거꾸로 ADT캡스가 업황에 따른 실적 변화가 크지 않은 안정적 업체이기 때문에 호평하는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SKT가 여전히 투자자에게 신사업 투자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상황인 점이 고려됐다. 전혀 경험이 없는 신사업에 진출해 적자를 쌓기보단 안정적인 ADT캡스에 투자 재원을 소진하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기관투자가는 "과거 SKT가 새로 O2O사업을 해보겠다고 미국에서 스타트업 샵킥을 인수했지만 적자만 누적되고 있다"며 "박정호 사장의 역량을 믿더라도 SKT 조직 내 투자 역량은 믿진 못하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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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3월 08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