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상장으로 경영진 '큰 돈'
2세대 경영진 정년 다가온 로펌
주요 법무법인들 지도체제 정비
다음 세대 마음 얻는 것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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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본시장 참여자들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주력들이 떠났거나 은퇴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후계자를 세우거나 안정적인 승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승계에 대한 공감대는 커졌지만 실행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초기부터 기반을 닦느라 고생하고 많은 것을 얻기도 한 경영진과 달리 후배 세대는 그런 경험이나 공감대가 없다. 경영진 의존도가 높은 업종 특성 상 후배 세대가 성장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수월한 승계를 위해선 후배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비전과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용사 '브랜드' 이어가려면 승계준비 필요...IPOㆍ인적분할ㆍ수수료 배분 등 다양
사모펀드(PEF)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어느덧 15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시장은 커지고 참가자도 다양해졌지만 믿을만한 실적을 쌓은 운용사의 수는 제한적이다. 기틀을 잡은 운용사는 유·무형의 자산을 지키고 철학을 공유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PEF는 소수 인력의 전문성으로 굴러가는 업태다. 회사가 미래를 보여줘야 조직 결속력을 다질 수 있고 당장의 인력 충원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국내 운용사들은 한창 일할 운용역으로 크면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왕적 창업자와 경험적은 주니어 직원들만 있고 허리가 없는 기형적인 곳들이 많다. 창업주 입장에선 가업을 계속 이어가고, 한편으론 회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승계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실현여부에 대한 고민은 초기단계였다. 그러다 작년부터 올해에 이어 새롭게 대형 PEF들이 조성되면서 고민이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에 PEF를 결성한다 해도 10년 후 청산할 때는 운용역들의 나이가 60세를 오가는 곳들이 많아지는데 이들이 계속 펀드레이징과 투자관리 일선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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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PEF의 산업화가 이뤄진 해외에선 승계와 경영진 교체 사례도 많았다. 블랙스톤이나 아폴로는 상장(IPO)을 통해 경영진이 큰 돈을 쥐었다. KKR, 칼라일, 리버사이드 등은 공동 최고경영자(CEO) 그룹에 새 CEO가 들어오는 방식으로 연착륙하고 있다. KKR은 지난해 한국계 미국인 조셉 배와 스콧 너톨을 공동 대표 겸 COO로 승진시키고 이사회에 참여시켰다. 칼라일은 올해 1월부터 한국계 미국인 이규성 씨와 글렌 영킨이 공동 CEO를 맡게 됐다. 아폴로는 1월부터 스캇 클리인만, 제임스 젤터가 공동 대표를 맡아 운영한다.
유럽계 APAX는 수장이 60세가 되면 물러나고 다음 키맨들이 등장하는 방식을 확립시켰다. 헬스케어 전문 운용사 CRG의 창업자 찰스 테이트는 2015년 경영권을 공동 파트너에 넘기면서 4~5번째 펀드에서 성과보수만 받기로 했다. 창업주의 공로는 인정하면서도 후계자가 지분을 살 자금을 마련할 여유도 주는 구조다.
국내 PEF 승계의 핵심도 다음 세대 운용역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지분 분산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미 창업주끼리 지분 분산이 이뤄져 파트너십 형태로 운용되는 곳은 경영 구도가 안정적이고 지분 정리도 수월해 승계 부담이 덜하다.
일부 운용사는 인적분할을 검토하기도 한다. 업력이 길어지고 벌어들인 돈이 많을수록 회사 가치는 높아지고 지분 분산이 어려워진다. 인적분할을 통해 자산은 없지만 향후 전면에 나설 회사를 만들면 기존 경영진 외 운용역들이 지분을 손쉽게 늘릴 수 있다. 과거 투자실적과 키맨도 이어진다. 기존 회사는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면서 새 회사가 만들 PEF에 출자하는 등 관계를 이어간다.
상장도 고려할만하다. 해외 사례처럼 창업주들은 상장을 통해 투자 회수를 하고, 후배 운용역들이 지분을 확보할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회사 가치가 높을 경우 후배 운용역들의 지분 확보가 쉽지 않다. 시장에서 지분 분산이 과도하게 이뤄지면 경영 철학의 단절이 우려된다. 다른 회사들과 합심해 소수지분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과 달리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PEF는 상장 후 불확실성이 커지는 게 달갑지 않다.
주요 운용사들이 기간과 금액에서 여유가 있음에도 새로운 PEF를 만드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최근 MBK파트너스는 경영권 인수 일변도에서 탈피해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를 만들었다. 이 역시 승계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다양한 PEF를 결성하고 운용함으로써 차기 CEO 그룹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PEF 운용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독립계 PEF 운용사는 수익이 회사가 아니라 성과보수 계약을 맺은 파트너에 돌아간다”며 “막대한 관리보수를 받는 일부 초대형사가 아니라면 회사 자체 가치는 크지 않기 때문에 파트너들이 떠나고 싶을 때 지분을 털고 나가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반면 승계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운 곳들도 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상장사 디피씨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PEF보다는 운용역의 유출입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일반 회사들의 경영 시스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큐캐피탈파트너스는 자신과 모회사(지엔코)가 상장사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주인이자 정체성이다. 그 색채를 빼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단기간엔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승계 과정에서 선행과제는 성과 유지와 출자자(LP)와의 공감대 형성이다. 운용 성과를 꾸준히 보이지 못하는 곳은 승계 실익이 크지 않거니와 그럴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새로운 경영진 체제를 갖추더라도 LP들이 그 동일성과 과거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생 운용사와 다를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로펌의 'M&A 선수들' 경영진으로 이동...세대간 갈등도 거론
대형 법무법인 사이에서도 세대 교체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1세대 창업자들은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났고, 사세 확장을 이끈 2세대 경영진들의 정년이 다가오면서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올해 설립 41년을 맞은 광장은 M&A 전문가인 김상곤(사법연수원 23기), 이형근(23기) 변호사를 운영위원으로 새로 선임했다. 운영위원회는 광장의 집단 지도체제며 법인의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김재훈 대표 변호사(13기)는 정년을 맞아 후선에서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광장은 만 60세가 된 사람은 에쿼티파트너에서 물러나야 하고, 에쿼티파트너가 아니면 운영위원이 될 수 없다.
31주년이 된 태평양도 올해 초 이형석(21기), 이준기(22기) 변호사가 업무집행변호사로 뽑혔다. 업무집행변호사는 김성진 대표변호사(15기)를 도와 경영 업무를 맡는다. 기존 업무집행변호사인 오양호(15기), 한이봉(18기) 변호사는 실무로 돌아왔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 2013년 설립자 신영무 변호사가 승계를 둔 논란 끝에 회사를 떠나며 자연스래 주요 로펌 중 가장 먼저 세대 교체를 이뤘다. 율촌은 경영을 이끌어 온 윤세리(10기) 변호사가 올해로 에쿼티파트너 정년(만 60세)을 맞아 후계 구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작년부터 조직 개편을 통해 기업금융 부서를 6개 팀으로 나눴고, 20기 후반~30기 변호사들을 팀장으로 올려 관리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
M&A 등 기업 자문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온 변호사들이 경영진으로 자리 잡거나 경영 경험을 쌓는 추세다. 법무법인간 경쟁이 심화할 시기 M&A 자문 실적은 각 법인의 역량을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였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전후로 입사해 기업 자문을 수행하며 성장한 20 초중반 기수 변호사들이 법인의 중추로 부상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간 쌓아 온 기업 네트워크를 법인 차원에서 활용하려는 실용적인 이유도 거론된다.
다만 반작용도 있다. 그간 필드에서 고객과 먹거리를 장악해온 ‘스타 변호사’들이 회사 운영을 맡는 관리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회사 수익 측면에선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세대간 갈등 등으로 인해 속내도 복잡하다. '지분 이전'이 승계인가 아니면 '안정적인 세대 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승계인가' 하는 원론적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일단 고객들 입장에서는 말이 통하는 앞선 세대의 변호사들 즉 지금의 경영진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하다. 자연스레 돈 되고 중요한 일감은 경영진에,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일감은 후배들에 몰리게 되는 구조다. 법인 사정을 감안하면 은퇴도 자유로이 하기 어렵다. 광장 김재훈 대표변호사도 정년을 지나고도 1년 더 일한 뒤에야 후선으로 물러났다.
이 그룹에 속했던 창업 초기 동고동락하던 1세대 변호사 혹은 그와 함께 성장 가도를 달린 2세대 주역들까지는 ‘회사의 성장이 곧 개인의 성장’이라는 이해관계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엔 ‘구성원 중 하나’ 이상의 소속감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연차가 낮은 변호사들은 점점 사라지는 혜택, 공고한 경영진 그룹, 성취감 떨어지는 업무 등에서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갈수록 지분 파트너 달기도 어렵고, 성과가 눈에 드러나는 큼직한 거래는 선배 변호사들이 선점하고, 보수한도(캡)가 빡빡하게 씌워진 거래들만 넘어와 본인 이름을 단 마케팅도 어렵다는 푸념이다. 차라리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들어가는 것이 속 편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어쨌든 로펌들 입장에서는 다음 세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대형 법무법인이 꾸려온 브랜드 가치가 소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김앤장만 집단지도체제인 다른 대형 법무법인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창업자 김영무(76·사법시험 2회) 변호사는 고령임에도 지배력이 여전히 공고하다. 지적재산권 등 일부 사업을 분리해 아들에 물려준다는 둥 설은 많지만 정해진 승계 시나리오는 없다.
변호사만 4000명 가까이 되는 세계 3위권 로펌 영국 DLA파이퍼의 경우 지분을 보유한 파트너는 20명 안팎이다. 김앤장도 김영무 변호사의 지휘 아래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 분산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회계법인은 그나마 매년 벌어들이는 돈은 거의 배당으로 나가기 때문에 지분 가치는 크지 않다. 지분 파트너의 수도 많고 유출입도 잦다. 파트너가 되면서 낸 돈은 나갈 때 받아가고, 새로 선임된 파트너가 돈을 내고 그 자리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회계법인도 세대교체를 어떻게 할 것이며 후배들에 어떻게 소속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줄 것인지는 중요하다. 최근 사옥을 이전한 삼일회계법인의 선택에서도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비좁은 LS용산타워를 떠나 올해 완공된 아모레퍼시픽 본사로 옮겼기 때문에 파트너에도 더 좋은 업무 환경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파트너 사무실은 좁게 만들었고, 파트너들이 통상 차지하던 창가 쪽 공간도 스텝 회계사들에 양보했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파트너 사무실을 창가가 아닌 안쪽에 배치한 것은 고생하는 직원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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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3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