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가 일 다해야 하나"…회계·법무법인, 52시간 도입에 골머리
입력 2018.03.27 07:00|수정 2018.03.28 09:18
    300인 이상 사업장, 7월부터 52시간 제한 적용
    감사 몰리는 회계법인, 업무 들쑥날쑥 로펌 고심
    재량근무 기대하면서도 걱정…탄력근무도 아쉬워
    경영진 부담 토로…”결국 임금 조정 문제될 것”
    • 대형 회계법인과 법무법인들이 근로시간 단축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감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근무 시간이 들쑥날쑥한 업종 특성 상 법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업무 공백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파트너에만 일이 몰리거나 근무 단축에 따라 임금이 조정되는 경우 내부 갈등이 빚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나온다.

    •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이 지난달 말 통과됐다. 1주 근로시간을 기본 40시간까지로 하되 노사 합의에 따라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기존 내용은 그대로다. 그러나 1주의 개념을 ‘휴일을 포함한 7일’로 함에 따라 행정해석으로 허용했던 초과근무 16시간(토·일X8시간)이 줄어들게 됐다. 상시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오는 7월 1일부터 새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에 해당하는 대형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들은 자체적으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떤 효과가 있을지, 어떤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은 분위기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법인 대표자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따르기로 했지만 아직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회계법인들은 근로시간 단축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면 연말·연초에 몰리는 감사 업무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감사부문 회계사들은 이 시기 주 100시간 이상을 투입하고도 기한을 맞추는데 급급하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더 뽑아야겠지만 단 기간에 두 배 이상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법무법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감사업무처럼 정기적인 부담은 없지만 수임한 내용에 따라 수 개월간 잠을 설쳐가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수임, 수행 능력에 따라 근로 시간도 갈리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

      대형 법인들은 재량근로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은 '업무 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는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행정규칙에선 회계·법무 등 사무에 있어 타인의 위임·위촉을 받아 상담·조언·감정하는 업무라고 구체화하고 있다.

      재량근로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온 회계법인과 법무법인들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냐는 분위기가 있다. 다만 이전처럼 주당 근로시간을 한참 넘겨 일할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의 사기를 감안하면 경영진들이 “우리는 재량근로자기 때문에 법 적용이 안 된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재량근로제를 적용하기 위해선 노사간 서면 합의도 이뤄져야 한다. 누구를 근로자대표로 볼 것인지부터 어떤 합의 절차를 갖출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합의보다는 사실상 관행에 따라 재량근로가 이뤄졌었다.

      근로시간 단축 법안에 관여한 한 민간 자문위원이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을 콕 집어 52시간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얘기도 있다. 규정을 회피한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부담스럽다.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이 활용할 카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와 근로대표자가 합의하면 3개월 이내 단위기간을 평균한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 특정한 날의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다. 긴 시간에 걸쳐 평균 근로시간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주 52시간, 일 12시간 미만이라는 제한이 있다. 일정 기간에 일이 과중하게 몰리는 경우엔 3개월 안에 평균 근로 시간을 낮추기 쉽지 않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늘려달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회계법인에선 1년이 아니면 6개월, 그마저도 어렵다면 4개월로라도 늘려주길 바라는 눈치다. 법 부칙에선 2022년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도록 하고 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모두 영향이나 대안에 대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경영진에선 부담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회계법인 파트너는 “근로자 대표와 합의를 하려 해도 일부 반감을 가지는 직원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법무법인은 출퇴근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변호사마다 바쁜 정도도 차이가 난다”며 “역량 있는 변호사들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라 불만이 없겠지만 일이 많지 않은 변호사들은 근로시간을 준수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이러다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파트너 변호사들만 일이 늘어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장은 근로시간을 어떻게 줄이느냐 문제지만 결국 줄어드는 시간만큼 임금을 어떻게 줄이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이다. 업무 시간이 줄어들면 그 만큼 수행할 수 있는 업무량이 줄고 법인 전체의 이익도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해 인력을 더 뽑더라도 그만큼 대체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